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완전개정판 다빈치 art 3
J.M.G. 르 클레지오 지음, 백선희 옮김 / 다빈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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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를 읽으려고 이 책을 골라들었지만, 프리다 칼로만 만날 수 있었다.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그의 애정과 팬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더불어 그동안 무지했던 멕시코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발을 들일 수 있었다.


1521년, 번영하던 아즈텍제국이 에스파냐에 의해 정복된 이후 300년의 오랜 식민지 시대를 보낸 멕시코는 독립이후 공화제를 선포하고 대통령을 선출하였지만 정치적 혼란 끝에 디아스에 의한 독재정치가 행해졌다. 결국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한 때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기도 했지만 지나친 외채부담과 유가하락으로 다시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양극화문제가 심각해졌고, 현재도 많은 정치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다. (두산백과 요약)


디에고(1886년)와 프리다(1910년)은 멕시코 혁명과 그 직후의 시대를 살며 한편으론 혁명을 꿈꾸고, 다른 한편으론 원주민들이 살던 이전의 문명의 평화를 꿈꾸었다.


어린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고, 다시 버스사로고 평생 불편한 신체와 육체적 통증 안에 갇혀 살았지만 자기자신과 디에고에 대한 사랑으로 시들지 않는 삶을 살아낸 프리다의 일생을 읽으며 정말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다. 그녀의 그림에 나타난 아픈 꿈의 단면들은 섬뜩하면서도 마음이 아파오는 것들이었다. 꿈보다 더 솔직하게 자신을 나타내주는 현실처럼 보였다. 디에고에 대한 집념어린 사랑이 때론 자기애의 다른 일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러 현실적인 고통을 겪으면서도 어느 자리에서나 빛나보이는 그녀였다.


디에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디에고는 전형적인 남성상으로, 위압적이고 관능적이며 여성들 앞에서는 유치할 정도로 연약했다. 또한 이기주의자에다 향락주의자이고, 늘 불안해하며 질투심 많고 이야기를 꾸며대는 허풍쟁이였다. 그러면서도 힘과 열정과 권위, 초자연적인 순진함을 가진 애정의 화신이기도 했다." (28쪽)


그는 평생 놀랄만한 에너지를 과시하며 연애와 예술활동을 했고, 그 예술적 결과물은 양에서나 질에서나 놀랄만한 것이었지만(힘과 재능과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들), 그가 정말 가장 열정을 가졌던 일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혁명을 얘기했고, 그 길 위에 있었지만 디에고에 있어서는 '혁명' 역시 자신을 빛내기 위해 선택한 장식품 정도로 보일 지경이다.


디에고를 만날 당시 프리다는?


"인디언의 무사태평함과 혼혈아의 고뇌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대인의 근심과 관능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알아본 그는 프리다의 성숙한 젊음에 마음이 끌렸다." (50쪽)


많은 나이차를 넘어 둘은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였다. 디에고는 훗날 "그녀의 그림과 빛나는 존재감이 자신에게 놀라운 환희를 불러일으켰다"고 회고한다.


사실상 이 책에서 작가의 애정은 디에고보다 프리다에게 쏠려있다. 내용이나 사진들의 분량은 거의 반반정도인듯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읽으면서 자꾸 디에고에 관심이 갔다.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와 사진은 이전에 몇번 접해본 일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왜 프리다가 그다지도 디에고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에게 집착했을까'가 궁금해서엿다. 대단한 천재성을 인정한다해도 나쁜 남자의 전범같은 사람이 아닌가. (추남에 배불뚝이라는건 눈감아준다고 해도)


"어느날 저녁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 이혼에 합의해달라고 할 작정이었어. 초조해진 나는 야비하고 어리석은 핑계를 만들어댔어. 그게 통했던지 프리다가 즉시 이혼하자고 하더군." (188쪽)


책을 다 읽고도 여전히 문제의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 그와 헤어지고 끔찍한 공허 속에서 지낸 프리다, 그의 바람기에 피를 뚝뚝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던 프리다를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살며 이해할 수 있는 세계와 그들이 지향하고 구축해갔던 세계가 당연한 얘기지만 참으로 많이 다른 모양이다.


우주 속에서 멕시코 유모가 프리다를 안고 있고, 프리다는 다시 이마에 제 3의 눈을 가진 디에고를 안고있는 프리다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본다. <우주와 지구 그리고 멕시코에서 나와 디에고, 솔로틀이 벌이는 사랑의 포옹> (1949년작)


"디에고는 일생동안 공산당에 대한 소속감과 개인주의적 표현 사이에서 방황했다. 이것은 그가 실천, 애정행각, 여행, 돈의 위력 같은 존재의 유혹과 자신의 내면세계 사이에서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 깊숙한 곳에는 프리다의 얼굴이 있었다." (235쪽)


어찌보면 디에고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는 대목이다. 자기애로 인생을 채운 남자, 디에고. 하지만 프리다가 그를 흔들었던 것 또한 분명한 것 같다. 프리다는 자신을 잘게 더 잘게 부수어 강철같은 디에고의 거의 보이지않는 틈새로 조금씩 들어가려 했을까? 그의 후기 그림들이 조금쯤 프리다의 작품과 닮아있는듯 보여지기도 했다.


자신의 실재 얼굴보다 훨씬 멋진 모습의 자화상을 그렸던 디에고, 자신의 실재 얼굴보다 늘 더 투박한 모습의 자화상을 그렸던 프리다. 둘은 서로가 자신을 채워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분명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혁명, 그것은 저항이었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향한 사랑과 공포의 눈길이며,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자 착하고 힘없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었다. 또한 푸른집과 그 정원,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미묘하고 고뇌에 찬 우주를 두루 껴안고자 하는 꿈이었다. 그녀의 혁명, 그것은 육체적 고통의 폭발이고, 고통을 견디기 위해 점점 더 많이 복용해야 하는 진통제이며,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 망각과 비현실 속에 머물기 위해 이따금 피우던 마리화나였다. 또한 그것은 고통과 난관을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오랜 의지이고, 부러졌다가 스스로 연결된 그녀의 척추를 대신하는 '희망의 나무' 였다." (246쪽)


특별한 삶을 살다간 이들의 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다양한 감각들을 자극한다. 아주 낯선 장소를 여행할 때처럼 생경함과 두려움, 불가해한 느낌, 설레임과 질투 같은 온갖 감정들을 출동시킨다. 프리다와 디에고의 삶 역시 나 감각들을 두드리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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