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 철학노트 필사본 10년 후 나를 만드는 생각의 깊이 3
홍자성 지음, 김성중 옮김 / 홍익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차례 컬러링북의 열풍이 휩쓸고간 자리에, '필사'책의 바람이 불고있는 것 같다

손에 맞는 필기구를 들고, 마음에 맞는 문장을 써내려가는 일은 훨씬 고요한 바람이다.


정보를 구하고, 스토리를 쫓으며 읽는 형태의 독서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때로는 느린 독서에 빠지고 싶은 때가 있다.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꼼꼼히 읽어가거나, 외국어로 된 책을 한 문장 한 문장 우리글로 옮겨가며 읽어가거나..  '필사' 역시 그런 느린 독서의 매력적인 한 방법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필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는 '한자'가 아닐까. 한글자 한글자에 의미를 담고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 '사유'를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이 책은 한자 원문을 필사하며, 우리말 풀이로 그 뜻을 다시 새겨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필사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신민이 "사람이 나물 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한 것에서 그 제목이 유래되었다는 <채근담>은 명나라 말기 문인이었던 홍자성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전집 225장, 후집 13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전편은 주로 사람과의 교류에 대해서, 후편은 자연에 대한 즐거움에 대해 쓰여졌다고 하는데 이 책은 원문의 순서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공감을 줄만한 내용을 가려뽑아 여섯개의 장으로 나누어 싣고 있다.그리고 각 글마다 매끄럽게 의역된 우리말 문장과 함께 부분부분의 한자어 주석도 실려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 道에 이른다는 것, 참되게 산다는 것, 타인과 어울려 산다는 것, 세상을 헤쳐 나간다는 것, 군자의 도리에 따른다는 것.


각 장이 제시한 이러한 것들을 보면 조금은 뜬구름같기도 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읽고 써보고, 반걸음씩이라도 발걸음을 내디뎌보는 과정 속에서 '나'를 바로세워가는 일이 이 복잡하고 갈피잡기 힘든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느린 필사를 하고, 옛 시대의 글을 끄집어내는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달랑 펜 한자루 그리고 필사할 좋은 내용과 필사할 빈 노트까지 한 데 묶여있는 이 책 한권이면 갑작스런 자투리 시간도,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의 긴 긴 낮시간도 사색의 시간으로 변신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었지만 여전히 변화의 에너지가 될만한 말씀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잊고 지내는 인생의 팁들을

나의 功과 시간을 들여 

되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인생이란 덜어 버린 만큼 초탈할 수 있으니,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면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불필요한 말을 줄이면 과실이 적어지며,

불필요한 생각을 줄이면 정신력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함을 내세우지 않으면 타고난 본성을 온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덜어 버릴 줄 모르고 오히려 날마다 더하는 데 힘쓰는 자는

참으로 자신의 인생을 속박하는 사람이다.

(후집 132) / (11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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