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쓰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단편 소설집이면서, 한줄로 나란히 이어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인 까닭은

이 소설들이 私소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는 <인간실격>으로 잘 알려진 다자이 오사무의 딸로,

한살 때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동반자살을 한 후

어머니와 장애가 있는 오빠, 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후 오빠가 죽고, 사춘기를 맞은 작가는 집을 떠날 생각만 하며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 역시 미혼모가 되어 두아이를 데리고

어머니집 근처로 돌아오게 되는데,

몇년 후 본인도 아들을 잃게 된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일을 '나'라는 나무에서

굵은 가지 하나가 잘려나간 일이라고 적고 있다.

그 일로 '나'라는 나무의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나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계속 글을 썼다고 한다.


앞쪽의 소설 세 편은 아들을 잃기 전에 쓰인 것들로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어머니와의 화해를 모색하는 이야기이고,

뒤의 세 편은 아들을 잃은 후의 무력감과 현실과의 분리감 등을

주로 꿈의 복기를 통해 써내려가고 있다.


앞 쪽의 소설들에서도 죽음과 상실, 꿈은 늘 상존한다.

아버지의 부재와 직접 겪은 오빠의 죽음, 애완견과 애완묘와의 이별 등등.


"나는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끈질기게 도망쳤다."    (욕실)중에서


뒤 쪽의 소설들을 읽으면서는 '애도하는 일'과 '애도를 끝내는 일'에 대해

생각케 했다.

아직 정말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저 상상의 공감에 그칠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것이 아무리 적확하고 일반적인 표현이라 해도, 나는 아들 아이가 죽엇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이 맙다. 화가 나는데 그치지 않고 경멸감이 든다. 안됐다, 가엾다고 하는 사람도 용서할 수가 없다. 기운 좀 차렸나요, 라고 묻는 사람에게도 화가 나고, 지금쯤 천국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을 거예요,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예 무시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도 적합한 말을 찾지 못했다."     (자카 도프니-여름 집) 중에서


"삶이란 이렇듯 늘 분주하기 마련이다.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는 실컷 슬퍼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시간도 없이 이제 죽나 싶으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고, 언제 죽을지 미리 안다 해도 다른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슬퍼한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슬픔에 대하여) 중에서


마지막 작품인 (모든 죽은 이의 날)에서 파리에 머물다 돌아가게된 작가는 "일본으로 돌아가신다면서요, 기쁘겠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진정 '돌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작가는기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일이 난감해 '모르겠어요.'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엄밀히 말해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그 장소, 그 상황은 오직 그 시간에 한 번뿐인 사건일테니까 말이다. 가장 근사해보이는 어떤 다른 곳으로 가는 일만이 있을 뿐, 우리는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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