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엊그제 작은 아이가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내 마음까지 온통 설레게 해놓고 휙 가버렸다. 책으로나마 위로를 삼아볼까... 라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꽤나 위로가 되었다. 물론 위시 리스트가 숙제처럼 남긴 했지만 말이다.


편안함과 양적인 만족이 여행의 본질이 아니라는걸 알지만 사실 여행 기회가 많지 않은 경우, 여유로움과 사색을 즐기며 다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감수성과 생각이 퐁퐁 솟는 작가의 여행기를 따라 읽으며 대리만족을 얻기도 하고,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다음에 어딘가를 간다면 잠시나마 이런 모양새의 여행을 해보자는 짧은 결심을 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남는 건사진 뿐이라며, 머리로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기를 거의 포기한 듯 모든 장면을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보고 지나가는 일이 부쩍 많아진 것이 또한 요즈음의 여행 풍속인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행태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기에 과괌하게 사진찍기를 배제한 여행을 떠올려보곤 한다. 하지만 막상 멋지고 낯선 풍경 앞에서는 눈보다 사진기를 먼저 들이대곤 한다. 이 책 속의 사진은 대한항공에서 제공받는 것이라고 하니 작가는 그저 눈과 마음으로 여행한 것이다. 사실 앵글을 통해 대상을 보는 한 여행자는 끝내 이방인일 뿐, 그 안에 진정으로 동화되기 힘든게 아닐까. 그 곳의 공간과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가장 큰 훼방꾼인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천천히, 느린 속도로 다니며 보고 느낀 유럽 여행의 기록과 사색을 담은 멋진 책이었다.


열 개의 소주제 별로 각각 열 곳 씩, 모두 백 곳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첫 장소, 파리부터 유혹은 매우 강력했다. 중독성은 있지만 유독성은 없다는 '파리진'을 깊이 들이마시며 파리의 거리들을 걷고 싶어진다. 작가가 만국의 위대한 모국어라 칭한 눈짓, 발짓, 손짓 그리고 아주 짧은 불어를 익혀서 이름만으로도 설레고 그리운 파리에 며칠간 묻혀 지내고 싶다. <인형의 집> 속 노라가 몰래 먹던 마카롱, 그 은밀하고도 유혹적인 쾌락의 절정을 맛보고도 싶다.


폼페이의 유물들이 가장 많이 전시되어 있다는 나폴리 국립 박물관에서 영화로움의 영광스런 폐허를과 마주하고 싶다.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공간에 심지어 책이 가득차 있으니 생각만해도 벅차오르는 포르투의 렐루 서점의 낯선 외국어 숲을 헤매이고 싶다. 그리고... 그리고... 이러다간 백 곳을 모두 적어내려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행 자체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고, 나를 부려놓고 싶은 여러 곳의 멋진 여행지도 찜해놓았으니 이제 '떠나는 일'이 숙제처럼 남았다. 풀어야할 멋진 문제가 있는 것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부지런하게 하고, 한편으로 일상의 닳아빠진 사고에서 해방시켜주는 멋진 일이 아닐까.

우리는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 노트북과 데스크톱을 사용하면서, 예전과는 비교도 한 될 만큼의 엄청난 자료들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데 달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자료를 기계가 아닌 마음으로 기억하고 의미 부여하고, 해석하는 데는 어느 때보다 무심해진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길들여진 욕망으로부터, 익숙한 집착으로부터 내가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는 희열을 느꼈다. 그것들이 없어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것이 없어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 그것은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 예행연습이기도 하고 욕망의 거미줄에 내 소중한 자아를 내주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싫어한다`고 했을 때, 그 대상에 대해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순간적인 인상 때문에, 또는 다른 안 좋은 기억과의 엉뚱한 연결고리 때문에, 아무 죄없는 대상이 싫어질 때가 많다.

여름의 태양빛은 모든 것들을 더욱 생기롭고 눈부시게 비춘다. 하지만 겨울 응당에서는 사물이 지닌 본래의 빛깔이 더욱 당당하게 빛을 발한다.

먼 예날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참하게 쓰러진 건물의 잔해들 위로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중략) 사라져버린 생명의 흔적 위에 또 다른 새 생명이 자라나고 있었다. 생명은 사라졌지만 또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고, 문명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자리에는 그 문명의 폐허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는 여행자들이 또 하나의 문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당신의 혼자 여행할 수 있다면 당신은 혼자 살 수 있는 용기와 능력 또한 지닌 것이다. 혼자인 나를 견디고, 가꾸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여러 사람과도, 어떤 상황에서도 잘 지낼 수가 있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 시간 동안 내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을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략)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절제와 이별과 인내의 지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