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 거대한 뿌리 - 일기와 생애, 조선산 기독교를 온몸으로 살다
박찬규 엮음 / 익두스(IXOYE)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란은 유사 이래 끊임 없이 이어져 왔다. 함부로 가를 수도 쉬이 봉합할 수도 없는 것들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읽을 때 우리 눈 앞에 놓이는 것은 이론의 불가시적 구조물이나 실천의 가시적 양태가 아닌 한 인간의 삶이다. 위대한 이론도 면밀한 실천도 개별적 생애와 동떨어진 것이라면 무용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김교신의 삶을 보며 얻을 것은 단순히 어떤 이론이나 실천에 관한 교훈이 아니다. 우리는 김교신의 생애를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는 인격의 고매한 자태를 발견한다. 그러한 발견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는 삶의 가능성과 그 유효성에 대한 확신을 얻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고백하는 믿음, 신앙고백과 삶의 일체화, 날마다 거룩에 사로잡히기 갈망하는 고집스러움.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단순히 천국가기 위함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주신 계명을 평생토록 지키는 것이요, 계명의 본래 정신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것임을 알았으며 또한 그리 살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탐나는 것은 그의 고결한 인품일 것이다. 인격의 본디 모습은 환란 중에 드러나는 것이 진실이니 대부분의 범상한 사람이라면 고난 중에 인격자로 오롯이 서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성서조선 사건 당시 당국의 취조에 대한 김교신의 답변은 그 인물 됨됨이를 짐작케 한다. (이를테면, "신앙에 관한 한 한걸음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만사를 당하기로 결심하니까 마음은 평안하였다"라거나 "나는 그리스도와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조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황국신민서사는 후일에 망국신민서사가 될 것이다"라는 답변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밝히 보아야 할 것은 그의 가진 것에 앞서 주께서 그로 그리 살게 하신 은혜의 역사이다. 그의 일기 면면에 흐르는 반성과 감사의 고백은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의 삶 가운데 맺은 열매이다. 우리는 김교신의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한 자가 어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보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기록과 고백의 종교이다. 기독교 신앙은 전적으로 기록에 의존하여 보편성을 획득하며, 개개인의 고백에 의지하여 독특성을 확보한다.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의식하는 개별적 인간의 인생은 보편과 개별의 차원을 아우르며 주관에서 객관으로의 도약을 이룬다. 김교신의 정체성은 조선의 의로운 기독인인 동시에 온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드러난다. 그는 기록된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을 기억하며 또한 그것을 온 삶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이 책의 기록을 읽는 일은 그를 기억할 것을 강제하며, 그를 기억하는 일은 그가 살았던 때와 실상 크게 다르지는 않을(신앙고백 없는) 오늘의 삶에 있어 회개와 결단을 촉구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면 고난을 받을 것이요, 끝까지 인내하면 소망을 얻을 것이며, 그 소망은 끝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니 수난 당하는 일을 기피하고서 어찌 영생을 감히 입에나 담을 수 있겠는가. 김교신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가 사랑하는 조선 땅과 조선 백성을 사랑하였다. 그는 그 사랑으로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고 인내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소망을 잃지 않았으며 끝내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 그처럼 그리 살기에 심히 어려운 시대였다. 그러나 김교신처럼 환란을 견디며 살다간 선진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핑계치 못하게 만든다. 이 땅의 교회가 무너지고 패역하며 그리스도 아닌 다른 이유로 멸시받는 까닭은 김교신과 같이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가 희귀하다는 사실 이외에는 없다. 

 
 김교신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작금의 기독교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서글프기 짝 없는 일이다. 이 땅의 교회 역사는 어째 성직자들만을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온 듯 하다. 허나 성경을 통하여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 나라의 크고 놀라운 일들은 부족하고 흠많은 일반의 인물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이제는 이 땅의 교회 역사를 움직이고 써내려가는 동력이 실상 몇몇의 성직자 뿐만 아니라 이름없는 신자 개개인들에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교신의 생애를 살펴보는 작업은 분명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죽을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 땅의 이름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전을 줄 것이다. 

 
(김교신에 관하여는 이미 그의 기록을 모아놓은 7권의 전집이 있다. 이 책은 그 전집과는 별개로 김교신의 생애에 대하여 잘 파악할 수 있도록 개괄적이고도 꼼꼼하게 구성되어 있다. 전집에 앞서 이 책을 필독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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