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머치토커에 무상식인 여주. 귀엽다고 생각하고 만든 인물은 아니시겠죠? 실제 주변에 있다면 손절할 인물. 몰상식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인물. 이세계로 가서 고생한 것이 아니라 그냥 머리가 장식인 인물. 현대사회에서 계속 살아도 사회생활은.. 주변에 민폐끼칠 존재임.대학을 다녔다고? 얼마나 수험생활과 알바에 치인 인생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온갖소설을 읽을 여유는 있으면서 상식을 챙길 시간은 없었다는 건가요? 너무 극혐이라 읽기가 곤란함. 미쳤지 내가 왜 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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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마지막 여행이 끝나면 (외전 포함) (총11권/완결)
하늘가리기 / 피오렛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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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뭐 작가님도 믿고보는 편이라 재미있게봤습니다. 그런데 이넘의 오타는 아무도 점검허지 않나봐요.. 넘쳐나는 오타와 교정하지 않는 출판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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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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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풍자소설 '바보선'에 나오는 뒤러의 목판화에는 광대가 뒤에서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그리스어로 디케)의 눈을 가려주는 모습이 있다. 정의의 여신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을 가려 정의를 보지 못한다는 풍자의 의미라 한다. 현실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런 현실을 반영하는 법이 현실을 따라서 모순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간은 정의의 여신이 다스리는 황금 세상을 꿈꾸었으나,  지금의 세상은 디케가 떠난 혼란스런 철의 세상일 뿐이며, 법은 너무 멀고, 너무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가 꿈꾸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황금 세상'은 '법'에 의해서, '디케의 율'에 따라서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디케의 눈'에서 이런 법과 정의, 진실에 대한 고민(어찌보면 변명을) 한다.
 
디케Dike는 그리스의 정의의 여신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여신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법 Dike와 같으며, 정의라는 뜻의 Dikaion과 그 어원을 같이 한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정의의 여신(동시에 정의를 집행하는 법의 여신)은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눈은 안대로 가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저자인 금태섭 변호사는 바로 이 여신의 눈을 가린 안대를 보면서, 가려진 안대 속에 여신의 눈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며 법의 의미, 그 집행에 있어 어려움을 자신의 경험 등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디케의 눈'은 부제 그대로 한 변호사의 법으로 세상을 읽어가는 이야기이다. 알기 쉬운 생활법률, 법을 몰라 억울하게 당하지 않기 등등의 실용서가 아닌 그리 무겁지 않은 법에 대한 칼럼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진실은 과연 어디에'라던가 '창조론이 과연 과학인가 그리고 이것을 법으로 정할 수 있는가', '포르노와 표현의 자유', '형벌은 죄를 벌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인간을 교화하기 위해서인가' 등 주제 하나하나를 보면 아마 평생을 두고 고민해도 충분할 무게의 것들이지만 저자의 경험과 유명 판례 등을 통해 나름 쉽고 가볍게 풀어나간다.
 
일본식 한자어가 가득한 법전이나(지금은 바뀌고 있다지만), 평범한 일반인에게는 너무 먼 변호사와 검사, 판사들의 글에 질려서(10 여전 전 수십페이지를 넘어가도 마침표를 찾을 수 없었던 어느 공안 검사의 논고를 보고 질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법을 너무 높고 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법이라는 것이 결국은 인간들의 일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이들도 인간들이라는 것을 한번쯤은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글들의 모음이 '디케의 눈'이다. 
미국영화를 보다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미란다 원칙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별볼일없는 성폭행범의 이름이 미란다였고 이자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미란다 원칙을 만들었다), 너무 뻔뻔한 범죄자를 변호하는 얄밉디 얄미운 변호사들과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변호사의 입장에서 설명을 해주는 것은 내게는 나름 흥미있는 경험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솔직히 책을 보면서 검사이자 변호사로서 법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기대했으나 그보다는 미국쪽 판례에 대한 내용이 더 많이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로스쿨에서 연수를 하면서 그쪽 판례 등을 공부한 경력이 이번 책을 쓰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는 검사로서, 변호사로서 현장에서 뛰는 저자의 좀 더 생생한 경험과 우리 법 현실에 대한 고민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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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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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득이'는, 한 아이가 사람들과의 만남과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어떻게 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성장소설이다. 카바레 삐끼로 일하다 직장을 잃고 전국의 오일장을 찾아 떠도는 '난장이' 아빠와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베트남 엄마, 혈육은 아니지만 삼촌으로 부르며 같이 사는 정신지체아 민구 삼촌 등 완득이의 환경은 '불우'하다. 그러기에 완득은 제 자신 안으로만 침잠해 들어갔고 세상에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껍질 속에 자신과 자신의 분노를 숨기고 있는 완득을 알아 본 담임 똥주가 억지로 그를 끌어낼 때까지는.(아, 무슨 희생적인 선생님과 반항적인 아이의 헐리웃 스토리 같이 이야기를 요약해 버리다니. 절대 그렇지 않다. 똥주는 기초생활수급자 완득이네에게 햇반도 얻어먹는 뻔뻔한 선생이고, 완득이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도 이해할 줄 아는 속이 깊은 아이이다).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단은 재미있다. 아마 십대 아이들이 봐도 분명 재미있어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완득이라는 씩씩한 아이와 괴짜선생 똥주를 중심으로 여러 조연들까지 톡톡 튀는 대화와 행동을 보여주며 정감이 가도록 만들어준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글은 시종일관 입에 웃음을 머금게 하면서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의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들 정도로 흡입력도 있다(결말도 어느 정도는 해피엔딩이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무언가 모를 허전함도 느껴졌다. 작가는 이 길지 않은 책에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 이주 노동자, 장애인 문제까지 많은 것을 이야기에 담고 싶어했다. 사실 이들 각각은 하나하나가 장편소설의 주제가 될 만한 것들이다보니 짧은 완득이의 이야기에서는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다보니 책에서는 '어, 완득이 녀석, 성격 한번 좋네. 베트남 엄마도, 난장이 아빠도 조금밖에는 힘이 들어보이지 않네 뭐, 괜찮은 것 같잖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갈등은 쉽게 해결이 되었다. 사실 현실은 더 우울하고 가혹한데.

정감가는 등장인물들은 톡톡 튀는 대화로 나름 개성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그 평면성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조금은 더 심각하게 고민을 해도 되고, 조금은 더 죽을 것처럼 슬퍼하고 좌절해도 될 것 같은데... 사춘기 격렬한 사내아이잖아. 아니 사실 내 불만은 다들 주인공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너무 밝다는 데에 있다.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아, 그래서 유쾌, 상쾌, 통쾌 완득이던가. 

어쩌면 작가는 완득이 같은 환경이라도 주위의 어른들이 담임 똥주처럼, 아니면 하다못해 평범하지만 결국은 완득이네를 이해하는 이웃집 아저씨처럼만이라도 이웃의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책을 읽게 될 아이들도 자신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조금은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이야기에 담아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책은 완득이네의 주요 갈등이 해결되면서 흐믓한 결말을 보여준다. 그러나 완득이에게도,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이다. 세상으로 나갈수록 완득은 더 많은 혼혈아 차별, 장애인 차별, 학력 차별, 빈부의 차별을 겪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쉽게 해결되고 해결될 것처럼 보여준다는 점에서 '완득이'는 일종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고, 아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꿈을 꾼다. 책에서 어떻게 꿈을 꿀 지 배운다면 언젠가는 모든 '완득이'들이 세상과 더불어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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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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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가 그토록 비참하게 유린당하고 죽게 되었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가 예쁘고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생겼다는 이유에서였다. 가이지와 아쓰야라는 두 소년들에게 에마는 단순한 사냥감이었을 뿐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슬픔, 기쁨 등을 느끼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 '미성년자'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죄에 대해 뉘우침을 보여주었다면, 그들의 부모가 맹목적으로 자신들의 아들을 감싸는 대신 진심으로 참회를 했더라면, 딸의 복수를 원했던 나가미네의 결말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다 소용없는 말이다.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가해자과 그들의 부모가 자신의 영혼으로 죄를 비는 경우보다는 죄를 축소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방황하는 칼날'과 '붉은 손가락' 두 편 밖에 안되지만 이로부터 감히 그의 성향을 짐작하자면, 그는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 같다. '붉은 손가락'에서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화내고 소리치고 발버둥치면 주위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어주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그렇게 아이들을 키운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이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타고난 범죄자이던 아니면 환경이 키운 범죄자이던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죄없는 타인을 상처입히고 죽인다. 아직 미성년자인 그 아이들을 책임질 부모들은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맹목적으로 아이들의 죄를 덮는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소위 소년법이라고 불리는 법이 보호를 해준다. 두 편의 소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라고 읽혀진다.
 
점점 흉폭해지는 소년범죄(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 차라리 평범한 인간들과는 다른 뇌를 가진 사이코패스라고 분류해버리고 싶은), 그리고 피해자보다는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처벌이 아니라 보호이다)하는 미성년자를 위한 소년법의 갈등 사이에서 여러 인물들이 방황을 한다. 법집행자인 경찰들도, 죄를 저지른 가해자와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아버지, 그리고 방관자이기에 공범자가 된 많은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 무엇을 바라는지를 몰라 이리저리 방황을 한다. 정의의 여신은 공평해야 하기에 눈을 가린 것일진데,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인가 그녀의 칼날은 옳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때로는 죄를 지은 자를 위해 상처입은 자를 더욱 더 상처입힌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성을 가져서, 그리고 가까운 미래 언젠가는 부모가 될 입장이기에 나가미네의 복수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기에 와카코의 마음과 행동에 공감했다. 악법이라도 법은 지켜야 하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복수는 절대 안된다는 원칙을 되뇌고 있지만 마음은 나가미네와 와카코에게 기울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진심으로 바라는가. 법인가 정의인가. 원래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어야 할 이 두가지가 불일치한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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