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하 까치글방 151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박여성 옮김 / 까치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초년 시절 가장 좋아하던 과학 저술가 폴 데이비스의 저서를 통해 알게 된 책. 그의 저서마다 너무도 자주 언급되어 도대체 어떤 책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되었단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1판 1쇄, 따끈따끈한 녀석을 상,하 권 한꺼번에 구입하고 말았죠. 평소에 잘 안 이러는데... -_-;;

그게 99년 가을, 그러니까 5년 전의 일이네요. 한껏 부푼 가슴을 안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총 1000여 페이지 가운데 2/3 가량을 읽고는 더 이상 읽기가 부담이 되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다시 읽은 <괴델, 에셔, 바흐>는 여전히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저자의 천재성에 끊임없이 감탄을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전체 내용 가운데 60~70% 정도만 소화했다는 느낌입니다. 1980년 퓰리처 상과 미국 도서 대상을 수상한 저서 치고는, 역자도 언급했듯이 내용이 상당히 난해한 편입니다. 한국어 번역판도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방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힘이 있어서 매니아층을 형성할 만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두 번 책을 읽는 일이 없는 제가 이미 두 번이나 읽었고(물론 첫번째는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읽기를 끝내자 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고 싶어졌을 정도니까... 대충 감이 오시나요?

이 책은 우선 제목부터 상당히 독특합니다. 20세기 현대 수학의 한 획을 그었다는 '불완전성의 정리'의 창시자 쿠르트 괴델, 수수께끼같은 그림들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판화가 모리츠 에셔, 그리고 화성학의 대가 요한 세바스챤 바흐, 전혀 어떤 공통점도 찾아보기 힘든 이들 셋이 실은 같은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다른 형태로 표현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바흐의 위대한 카논들과, 괴델의 사상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한 에셔의 작품들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바로 '정신의 본질은 무엇인가'였던 것 같습니다. 마치 주제를 반복하면서 점점 상승하는 카논과도 같이, 저자는 지루할 틈 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점차적으로 자신의 주제를 고조시키며, 그 전 과정이 하나의 거대한 주제로 통합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특히, 장 사이사이에 배치된 아킬레스와 거북의 우화는 각 장의 주제를 재치있게 드러내 주고 있어, 읽는 즐거움이 배가될 수 있도록 한 저자의 배려가 돋보입니다.(마지막 장에서는 저자의 언어유희가 최고 절정에 이른답니다.)

내용의 방대함을 보이기 위해, 이 책에서 '정신'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사용되는 지식의 범주를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물리학, 수학, 논리학, 예술비평, 컴퓨터 사이언스, 인지과학, 기호학, 문학, 참선, 분자생물학 등이 있습니다. 다루어지는 주제가 아니라, 기대고 있는 '지식의 범주'라는 데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게 넓은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위해 온갖 영역을 넘나드는 저자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지요?

훌륭한 번역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이미 한 명의 사람이 이런 종류의 책을 성공적으로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에 대해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자인 박여성 교수는 영어판, 독일어판, 일본어판, 그리고 저자의 해설 노트를 참고해서 번역을 통해 살리기 어려운 저자의 끊임없는 언어유희를 꽤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불가피하게 해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상당히 만족할 만한 번역입니다. 1판 1쇄라는 점을 감안해할 때 오역은 찾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제 전공과 관련된 내용에 있어서는 거슬리는 전문용어 번역이 가끔 눈에 들어왔지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도전이었을 이 책의 번역을 6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이 정도의 수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해 존경을 표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막 덮고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후기를 쓰다 보니 내용이 장황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리에 정리를 거듭해도 쉽게 요약하기 힘든 수준의 내용을 억지로 간명하게 제시하는 것보다는, 감동을 그대로 드러내는 후기가 오히려 낫다는 생각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도전'하고 싶은 책입니다. 물론 그 때도 끝까지 읽기 위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요...

내용: ★★★★★
편집: ★★★
번역: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