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나 - 나도 모르는 나의 존재에 대하여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소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생각 이상으로 어렵고 심오한 내용이 많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없는 '나'에 관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한 두어번 읽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에도 한편으로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던 책이다.


"우리는 보통 성장한다는 것은 다양한 속성을 익혀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을 잃어가는지도 모른다." (p.27)


사람들과 생활하고 그들에게 맞추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개성이 희미해지던 그런 경험이 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그 주위의 사람들을 닮아가고 그들의 언행을 쫓아하게 되는 내가 있었다. '다양한 속성을 잃는다'는 저자의 표현이 많이 인상깊다.


" '그저 사내아이'란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어린 아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며, 아이는 이런 어른들의 관념에 맞춰 '그저 사내아이'인 척을 하는 사이에, 자신이 사내아이인 척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그저 사내아이'가 된다." (p.29)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바라보고 평하는 사람들의 말에 맞게 자연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너는 ㅇㅇ한 사람이야'라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어느 순간부터 그에 맞춰 가는 나를 뒤늦게 알아차리곤 생각했다. 날 '어떤 사람'이라 일컫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자신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 "너는 이 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니?"

어릴 적 우리는 타인에게 이 질문을 질리도록 들었고 교실에서는 이에 대해 글짓기를 해야 했다. 뭔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마도 그게 가장 좋을텐데. "(p.75)


"어째서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가 되려 하는 걸까? 어째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가 아니면, 살아가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내'가 해나갈 수 없는 것, 그것은 사실 내가 아니라, 타인이 먼저 확인하고 싶어하지 않던가?" (p.76)


내게 내가 되어야하는 '누군가'의 기준을 제시(또는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기준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달라진다. 그 '누군가'가 되지 않으면 이상한, 또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좀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두면 안되는 것일까... 위 인용 글귀의 마지막 부분에 공감하며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뭔가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마도 그게 가장 좋을텐데'라고.


"우리는 오랫동안 나다움만을 목표로 삼아왔지만, 거꾸로 '나다워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 (p.82)


이 책에서는 나 자신을 잃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또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잃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한다. 그것이 내겐 하나의 '허락'(?)처럼 여겨져서 다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안심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다워야 한다는 문구나 주장을 많이 접해왔었기 때문일까. 그걸 '강박'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인 적은 지금까지 없었기에 위의 글귀가 신선했고 왠지 반갑기도 하다.


"내가 언제나 '나'인 건 아니다. 하루 중에도 나는 좀더 강한 '나'이기도 하고, 거의 '내'가 아니기도 하다. 나는 원래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내'가 되기 때문이다."(p.103)


이 책은 '알 수 없는 나'에 대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라고 명쾌하고 확실한 해답을 알려주기보다 주로 나라는 인간에 대해 생각할 재료를 제공해주고 해석(?)을 해주면서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더욱 헷갈리고 애매모호한 것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부정적인 뜻은 아니다. 당연히 느낄 수 있을 법한 의문점도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걸 깨달았다.

특히 제일 기억에 남았던 대목은, 여자 아이가 '진짜 여자'가 되는 것은 여장(화장)을 하면서부터라는 것.


"여장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그리고 그 강요를 하는 수 없이 반복적으로 받아들이는 사이에 나는 여자가 되어 있었고,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을 수 없게 되었다."(p.27)


그냥 아무 생각없이 넘어갈 뻔했던 부분도 이 책에선 그걸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점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걸 읽는 나도 덩달아 주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고, 기존에 비해 관찰력이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아 유익했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