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이긴 하지만 책도 읽었고, 영화도 봤었다.내용을 알고 있으면 좀 마음 편히 읽을 만도 한데, 내내 긴장 속에서 읽게된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으면서도 등을 대고 편히 읽을 수 없는 기분.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을 알고 있거나, 수줍은 듯 혹은 순수한 듯한 맷 데이먼의 얼굴로 이 영화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원작은 바로 이 소설이다. 디키를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디키 부모님의 부탁을 받아 그를 만나러 갔다가, 결국 그 삶을 빼앗아 살게 되는 리플리의 이야기.그가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라는 말로 단순히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임은 작품 초입부터 드러난다. 디키를 만나러 가는 배에서 편지를 쓰는 부분인데, 어느새 몰입한 리플리는 마치 디키와 절친이라도 된 듯 글을 이어나간다. p33톰은 훗날 써야 할 내용을 상상해서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자 놀라고 말았다. 디키를 만나 몽지벨로 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는 둥, 디키의 귀국을 종용하는 일이 느리지만 잘 되어 가고 있다는 둥 …디키가 마지(톰은 마지의 성격을 완벽히 분석해서 적었다)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살짝 무서웠다.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인물들을 성격까지 분석해서 줄줄 써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사람이 아니다. 자체적으로 강화학습을 해나가는 인공지능이라도 본 것 같은 기분인데 이미 처음부터 리플리는 무의식적으로 디키가 되는 연습을 했던 것이 아닐까.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건 톰 리플리인데 정작 그 불안함은 왜 읽는 내가 다 안고 가야 하는 것인가. 그만큼 작품의 흡인력과 묘사가 대단하다. 우리의 재능있는 리플리는 상황판단도 빠르고 문제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도 있고, 무엇보다 눈썰미도 좋고 타인의 모방하는 재주까지 있는데 이 능력을 이런 곳에 아낌없이 쓰다니 아까울 따름이다. 명백한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 없다는 평이 많다. 그만큼 캐릭터가 복합적이고 무시할 수 없는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데, 난 아마 응원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의 리플리의 삶이 매우 궁금하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