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맞는 죽음 - 상
한스 팔라다 지음, 염정용 옮김 / 로그아웃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스 팔라다>라는 작가나 <홀로 맞는 죽음>이라는 책...... 다 낯선 이름이다.

책 제목의 무게감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더욱이 나치시대 독일인 소시민의 체제 저항이라는 모티브 역시 별로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정치참여나 사회개혁 같은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미있으니 한번 읽어보라는 지인의 권유와 이 책이 외국에서는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940년에서 42년까지 크방엘 부부의 이야기와 그들의 이웃과 베를린 시민들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계속 엮여 나오는데 처음에는 지루했다. 그러나 이 책이 갖는 묘한 매력이랄까 계속해서 읽다보니 작가가 각각의 인물들이 그 시대를 얼마나 힘들게 살아갔는지 독일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하면서도 반전을 거듭하며 줄거리를 짜임새 있게 엮어 나가는 것이 흥미가 있었다. 동시에 주인공들의 체포와 고문,죽음에 대해 독자로서의 긴장감을 계속 안고 읽어야 되는 정신적인 부담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했다. 많은 등장 인물들을 기억하는 수고와 함께...... 

 

 

사실 독일인 때문에 2차대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나 강제수용소에서 고통하며 죽어가야 했고 그에 대한 책이나 영화는 이따금씩 보아왔지만 그 당시 독일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그들에게도 얼굴이 있고(?) 감정이 있고 우리네 이웃들과 별다를 것이 없는 모습인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도 고통하고 두려워하고 서로 감시하고 밀고하고 밀고당하며 체제에 굴종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극악한 시대의 한자락을 그렇게 힘겹게 살아간 모습에 불쌍한 마음도 들었다. 

 

주인공인 가구공장 작업반장 크방엘은 정치에 전혀 무관심하게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아내로부터 당신과 당신의 총통이 일으킨 빌어먹을 전쟁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아내의 비난을 듣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결국 그는 독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고 그것은 따지고 보면, 신뢰하고 지지해왔던 히틀러와 나치당이 국민을 기만하고 밖으로는 침략전쟁과 내적으로는 체제 비판자를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폭정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자신이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일벌레 처럼 일만하며 개인적인 삶 만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저항이라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저항은 곧 체포와 처형을 의미했지만 결국 그는 체제에 저항하기 위한 결심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체제를 비판하는 엽서를 건물 한 구석에 몰래 몰래 놓으며 저항을 시작한다. 단 몇 사람만이라도 그 엽서를 제대로 읽어주고 나치체제가 막을 내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라면서......크방엘의 이웃인 페어지케 가족은 당원으로서 당에 충성하며 밀고하며 끊임없이 이득이 되는 것을 찾는다. 그리고 뚜렷한 직업이 없이 이웃을 염탐하고 밀고하며 역시 한몫 챙기려는 바르크하우젠과 같은 밑바닥 인생은 별별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경마도박과 노동기피로 여자들에게 빌붙어 살아 보려한 키 작은 에노 클루게와 자신의 일을 자부심을 갖고 충실히 범인을 잡아들이던 게슈타포 엘리트 경감인 에셔리히 등등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나치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 그들은 자기가 선택한 삶에 대한 결과로 삶이 더욱 망가져 가거나 각각의 죽음을 맞는다. 

 

이 책은 몇 마디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7백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이고 나치시대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한스 팔라다 라는 작가가 상당히 많은 내용을 책에 담아내려 한 것 같기 때문이다. 당시 부조리한 시대 상황과 사람들의 내면과 가끔씩은 종교적 문제와 책에 녹아들어 있는 작가 자신의 정신병으로 고통스러웠던 삶의 이력까지 말이다

어찌보면 감옥 안에서나 감옥 밖에서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절망적인 두려움을 갖고 끝까지 홀로 고통스런 삶과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다. 이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진정 용기 있는 삶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비겁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크방엘 부부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진정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끝까지 정직하게 고민하며 배워가고 결단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뿐 아니라 의심의 어려운 과정을 지나가는 것과 자기의 삶의 방식만이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 진정 용기있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 책을 읽고 또 한 가지 느끼는 것은 나치시대의 독일인이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주범이기도 했지만 그들 역시 공포정치와 독재하에서 고통한 피해자였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을 옹호하고 그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일반 국민의 고통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요새 같은 세상에 흔히 접할 수 있는 멘탈리티를 가진 책은 아니지만 소설적인 재미와 살면서 꼭 한번씩 생각해 봐야할 주제를 담아낸 좋은 책인 것 같다. 이 책과의 만남은 내 인생에 흔하지 않은 좋은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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