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강변에 꽃상여 가네
조병옥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랫만에 뜻하지않게 격동적인 '삶의 이야기'가 담긴 감동적인 수기를 만났습니다.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 한권을 손에 받아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해서, 어느 팔자좋은 양반이 노년에 취미생활 하시느라 미사려구로 써놓으신 이야기겠구나 하는 선입견도 있었지요.  저자와 친구 사이로 책을 보내어 주신 선배님의 호의를 생각하며, 읽고 있던 다른 책을 던져두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우선 집어든 책이 <<라인강변에 꽃상여 가네>>였습니다. 

프롤로그에.....배고픔에 시달리던 열살짜리 소녀가 쌀 한 자루의 보상으로 회유당해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하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무슨 삽화처럼 읽혀지기에....설마 이것이 저자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겠지?  다소 의아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서, 그 내용의 솔직함과 진실함에 이끌려서 단숨에 이 책을 읽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워낙이 어려서부터 재주가 튀는 소녀였던 저자 조병옥님은 지금은 칠순을 넘기신 분으로 음악(작곡)을 전공하셨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아 기르며 살던 중, 운명적인 사랑을 만납니다.  그 대상은 공자의 후손이라는 공광덕 선생님.  이혼을 거쳐, 그분과 재혼하며 1972년 독일로 건너가서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 자신도 리듬학을 공부하는 한편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고자 노동도 합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남편 공선생님이 박사 학위를 따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연구소에 근무하게 되나, 일년 남짓도 못되어 전립선암 선고를 받아 투병하다 19988년에 세상을 뜹니다.  저자는 남편을 라인강변에 묻어드리고, 독일을 떠나 미국에서 살다가 1995년경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대학에서 리듬학을 강의하는 한편 글쓰기 공부를 하여 자신과 자신의 남편의 일생을 정리한 이 책이 탄생됩니다.

조병옥님의 삶의 수기는 그분이 살아나온 남다른 인생역정과 문체의 매력때문에 그 자체로도 정신놓고 읽어지는데.......그러나 그들의 삶의 여정은 이 수필집에서 보여주는 숲의 초입에 불과합니다.  독자는, 예기치 않게, 마치 Alice in Wonderland 처럼, 196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의 한국의 암울했던 독재시대의 역사의 현장이라는 거대한 어두운 숲으로 껑충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1967년 한국을 뒤집어놓았던 '동백림 거점 북괴 대남 공작단 사건'으로 재야인사 194명이 검거당합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재독 작곡가 윤이상, 재불 화가 이응노라는 이름만 기억하고 있겠지만, 그 때 그 194명 중에 저자의 미래의 남편 공광덕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한국으로 연행되어 결국 3년 실형을 받고, 1970년 초초췌한 실업자의 모습으로 서울의 어느 거리를 헤맵니다.  저자는 당시 이대 음대 교수로 이미 가정이 있었으나,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지라는 운명적 역할이었을까요, 그에게 마음이 가서 결국은 첫 남편과 이혼하고 1973년 독일에서 그와 재혼합니다.  ("다른 이들 다 제거하고 조병옥 선생만 보고 싶어요..."라는 애절한 고백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여자가 있겠나요?)

그 후로---그들에게 한국은 돌아올 수 없는 조국이 되어 버립니다.  생활고에 찌들으며, 공부를 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하며,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에 새로운 유랑민들이 살았던 것입니다.  한국 독재 정치의 제물이 되어, 간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한국에의 입국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김지하 시인 구명운동, 동학난을 주제로 홍세화씨 등과  주도가 되어 재독교포들까지 가담하여 한국을 알리기 위한 연극활동, 윤이상님과 이응노님의 예술활동을 근거리에서 지켜본 이야기, 어느 통일 포럼에서는 여운형의 따님 여연구를 만나고, 북측의 청년이 헤어질때 저자를 끌어안고 "통일이 되면 보자우요"하며 울었다는 이야기,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강의같은 공광덕님과의 대화, 튀고 매력있는 성격의 저자가간간히 회상해주는 엉뚱한 행각도, 모두가 다 흥미롭습니다.  공광덕님의 42일 단식을 통한 암투병기, 그가 두 의붓아들들과 영원한 작별의 말을 나누는 장면은 눈물을 솟게 합니다.  그분이 임종시에 테입에 남긴 말, " .....조그마한 풀잎 하나, 돌 하나에도 온 신경에 호흡이 같이 하고 있다는 것, 이 진리를 모르면 참 어려워.....이 지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우정과 사랑으로 봉사하는거야.  희생, 희생이야....." 어느 교향악의 조용한 코다이처럼 귀와 눈에 어른거리며 감동을 줍니다.  텅 빈 외침이 아니라, 참으로 진실한 마음의 소리이기에.

예술, 사랑, 사람답게 정의롭게 살기 위한 투쟁, 가족과 친지들의 삶이, 한국의 독재와 민주화라는 당시 사회상을 배경으로 기술된 이 수기......이 글은 한 시대의 고발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글은 지구의 어느 구석에서 사랑의 힘으로 삶을 누려간 공광덕과 조병옥의 사랑의 이야기이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삶에 이끌려 다니는데 익숙하며, 삶을 끌고 다니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념에 의해 자신의 삶을 선택하여 살았다면, 그 삶 자체가 예술이고, 그 삶의 주인공들은 각자가 숨겨진 영웅이 아닌가 생각하며, 감동하며.....잘 읽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