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와 문명 논형학술총서 5
김갑수 지음 / 논형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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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날 <장자>는 도가 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문헌으로서 <노자>와 더불어 '노장'이라 불린다. 그다지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하였던 비운의 지식인 장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장자>는 저작 전체가 그의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의 사상을 담은 철학 저술로 평가된다.

<장자>의 첫 두 편인 '소요유'와 '제물론'은 소요와 제물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동아시아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위진 이래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선구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가 늘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전국 시대의 사상가로 불려지지만 <장자>는 전국 시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어떤 이들은 <회남자>를 지은 유안이 <장자>를 편찬하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적어도 <장자>가 유행하기 위해서는 위진 시대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동진 시대의 왕탄지와 같은 이는 <장자>를 없애버려야 할 책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던 책이다.

<장자>는 사마천의 <사기>의 기록대로라면, '어부'와 '도척'과 같은 편을 지어서 유학을 비판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까. 오히려 <장자>가 사랑은 받은 것은 도가에 배척적이었던 송명 시대에 이르러서부터이다. <장자구의>라는 유명한 장자 주석서를 낸 송대 도학파의 임희일 같은 이는 오히려 대문장가로 손꼽히는 양웅이나 사마천보다도 장자의 문장이 더 훌륭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장자>가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차지했던 위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 비운의 운명을 살아가는 절망한 지식인들의 위안, 예술적 해방의 정신, 도교적 양생의 선구로서였다. <장자>는 절망한 난세의 지식인들에겐 친구이자 위안이었고 때때로 공자의 정신의 일부를 계승한 은둔의 사상가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서구 사상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장자>는 또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강력한 사회 비판과 해방의 철학, 자유와 평등의 옹호자, 미신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난 합리적 자연관의 대명사로 <장자>는 각광을 받는다. 특히 이데올로기화된 권위주의적 사상에 대한 비판철학으로 <장자>는 거듭 태어나게 된다.

김갑수의 <장자와 문명>은 한국의 지적 풍토에서 이와 같은 현대적 <장자> 읽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저술이라 간주할 수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장자>의 합리적 성격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장자>는 천명론적 위계 질서를 정당화하는 모든 초월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자연적 세계관으로의 변혁을 이끌어낸 철학자이다. 인간 사회의 갈등과 전쟁을 불러오는 유위적 행위를 반대하고,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평등의 세계를 꿈꾸는 자유의 철학자로 평가된다. 이러한 이념의 중심에 무위의 철학이 자리한다.

김갑수의 <장자와 문명>은 장자 자체의 사상에 대한 해석상의 타당성을 논외로 한다해도, 사회적 갈등과 억압이 난무하고 자유와 평등이 짓눌리던 지나 온 우리 시대의 삶 속에서 지식인들이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를 잘 보여주는 시대 정신의 기록이다. 저자는 말한다: "장자 철학의 지향은 개인의 정신적 자유나 생명의 보존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면"이 있는 해방의 철학이다.

김갑수의 <장자와 문명>에서 '장자'는 비극적 삶을 살다가 간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보다는, 자유와 해방, 평등과 행복을 꿈꾸는 유쾌한 비판 철학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저자에 따르면, 장자는 산 속을 헤메이는 은둔자이기보다는 광화문 네거리 제일 앞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을 그런 지식인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이 어찌 유쾌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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