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아픔을 먹고 살아간다
이서홍 지음 / 도서출판 짝꿍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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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홍 작가님의 신간 시집을 읽으며 계속 생각나서 흥얼거리던 노래가 뭔지 한참 찾았는데 태연의 사계였다. 이 노래를 틀어놓고 책을 읽으면 작가님이 의도하신 감정이자 계절을 극대화해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표지의 도형 색감이나 배치가 심플하고 제목에 감성이 한가득이라 마음에 쏙 들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 작가님의 SNS를 따로 찾아보았고 그로 인해 알게 된 말이라는 시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가 『계절은 아픔을 먹고 살아간다』를 읽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다.



오늘도 말하지 못했다
너에게 꽂아야 할 말을
자꾸만 나에게 꽂아댄다

내가 나를
죽여간다.

나는 사랑에 있어서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해 결국 나에게만 말을 꽂아대는 타입이라 내가 나를 죽여간다는 말이 유독 공감됐다. 작가님의 감정뿐만 아니라 독자인 내 감정까지 시에 녹아든 느낌이었다.

책 소개

2020년, 시집 『황홀하더라니요』로 일상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 이서홍 작가가 새 시집으로 돌아왔다. 뜨겁고, 차갑고, 미지근하고, 오묘한 감정의 온도들을 시에 담아냈다. 때에 따라 변하는 감정의 온도를 계절 속에 녹여 그렇게 사계절을 완성했다. 시집 『계절은 아픔을 먹고 살아간다』는 서서히 변해가는 글의 온도를 마치 계절이 변하는 듯 그려냈다. 그렇기에 이 시집은 뜨겁고도 차가우며 가볍고도 무겁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감정이자 계절이기 때문이다.

어린 날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희망 하나 붙잡고 살아나던 어린 날이여
지금은 그 어디로 가버렸나

살아나리라 굳게 다짐하던
나의 어린 날은 어디로 가버렸나

이제라도 그날의 날 만난다면
이 말은 꼭 해주었을 텐데

더욱 멀리 날아올라
희망을 전하는
아름다운 한 마리 새가 되라고.

가냘프지만 묵직한 무언가를 노래한 시에 가장 걸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어린 날일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담겨있다.

나는 죽었다

길가에 살짝 피어난
작은 저 생명이 하찮아 보이는 순간
나는 죽었다

식탁에 차려진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무시하는 순간
나는 죽었다

책 속에 녹여진 한 인간의 번뇌를 덮어버리는 순간
나는 영원히
죽어버렸다.

아스팔트 사이에서 저도 살아보겠다고 힘겹게 피어난 작은 생명을 하찮게 여겼고 식탁에 차려진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여러 번 죽었고 이 시를 읽은 지금에서야 반성했다. 이제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싶다.

봄에도 당신은 참 아름다웠고

여름에도 당신은 참 시원했습니다

가을에는 낡은 책들을 많이 사랑했고

겨울에는 참 한결같았습니다

봄에도 나는 당신을 그리워했고

여름에도 나는 참 사랑했습니다

가을에는 낡은 사진들을 많이 쳐다봤고

겨울에는 참 사무쳤습니다

•••

마지막 시인 사계절은 책 소개를 그대로 담아놓은 듯 했다. 서서히 변해가는 글의 온도를 계절에 녹여냈다. 개인적으로 필사하기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시 하나하나가 날 그 계절로, 그 공간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읽다가 루즈해지거나 집중력이 흐려질 수도 있는데 페이지 하단에 작고 귀여운 그림이나 짧막한 문장들이 나와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런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디테일하게 생각한 것 같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자 감성의 계절이니 한번쯤 시집 『계절은 아픔을 먹고 살아간다』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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