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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더링 하이츠 ㅣ 클래식 라이브러리 4
에밀리 브론테 지음, 윤교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평점 :

아르테에서 5년간의 준비 끝에 2023년 봄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문학 시리즈인 ‘클래식 라이브러리’의 네 번째 작품으로 『워더링 하이츠』가 출간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클래식 라이브러리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컸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공간’을 통한 거장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라면, 그 형제 격인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는 ‘작품’을 통해 거장의 숨결을 느껴 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캐서린의 아버지가 데려온 고아 히스클리프의 등장은 이 워더링 하이츠의 진정한 폭풍의 출발점이 된다. 히스클리프를 감싸고 도는 아빠와 그를 싫어하는 아들 힌들리 언쇼는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히스클리프를 하인 취급한다. 힌들리와 달리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영원한 사랑으로 자리 잡는다. 신분의 차이로 캐서린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 저택에 사는 린턴과 결혼하고 사려졌던 히스클리프는 성공해서 다시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다. 결국 그의 재등장은 언쇼와 린턴 가문에 잔혹한 복수를 펼치며 이 두 가문의 3대까지 큰 상처를 남긴다.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 애는 늘 내 마음속에 있었어. 기쁨을 주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야,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 늘 기쁨을 주는 존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야. 내 마음속에 바로 나 그 자체로 남아 있단 말이야. 그러니 다시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그건 벌어질 수 없는 일이야. (p.126)
"캐서린과 같이 흙이 되는 꿈이지. 그게 더 행복한 거야!" 그가 대답했어요. "내가 그깟 썩는 걸 무서워할 줄 아나? 관 뚜껑을 열면서 난 캐서린이 이미 그렇게 변했을 거로 기대했었어. 하지만 내가 죽어서 함께 묻힌 후 같이 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기뻤어. (p.428)
나는 포근한 하늘 아래서 세 무덤 사이를 서성였다. 히스꽃과 초롱꽃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방과 풀 사이로 들리는 숨 쉬는 듯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렇게 고요한 대지에 묻힌 사람들이 제대로 안식을 취하지 못할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p.500)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을 그대로 아니 더 광폭하게 행한 히스클리프를 어디까지 이해해 주는 게 맞는 것일까?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나 또한 몇 년 전 궁금한 마음에 읽었으나 히스클리프의 이 광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을 받아들이긴 난감했다. 처음 읽었을 때 무거웠던 마음 때문에 이번에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느낌으로 이들의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여전히 난 악마의 화신 같은 히스클리프와 히스테릭한 이사벨라 또한 주변 인물까지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히스클리프가 당했던 고통은 분명 안타까웠으나 타인에게 광폭하게 행동하고 사랑했던 여인의 딸에게까지 잔혹하게 대했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몇 번을 더 읽으면 이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지만, 클래식 라이브러리로 또다시 만난 광기 어린 사랑의 화신들에게 조금은 더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무게감 있는 세계문학이지만 이렇게 산뜻한 디자인으로 출간된 클래식 라이브러리에 대한 기대감이 컸고 다음 작품 또한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