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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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시오니즘 지도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책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의아했었고 이것저것 찾아보니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의 비판을 받았고 그 책 또한 이스라엘에선 처음에 출간되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가 사상이 더 알아보고 싶었으나 그의 다른 저서가 어려울 것 같아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켄 크림슈타인의 그래픽 노블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로 그의 삶을 조금은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한 궁금증을 내내 가지고 있던 차에 한나아렌트센터 선임 연구원이자 브루클린연구소 부연구원인 사만다 로즈 힐의 한나 아렌트 평전을 읽어볼 수 있었다.

 

카를 야스퍼스를 스승으로 두며 철학의 탐구하던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정권과 마주한 지식인이 저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철학이 도덕적 행동을 낳는다는 것은 거짓이라 생각하고 철학자가 아닌 정치학자가 되기로 한다.

 

한나는 유대인 문제를, 일반적인 정치적 맥락에서 하나의 정치 문제로 인식했다. 한나가 생각하는 정치의 기본 원리는 자유였다. 따라서 자유의 공간을 지키려면 과거와 미래라는 이상화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한나는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현재를 직시하라고 전통에 사로잡힌 시오니스트들을 다그쳤다. 한나는 시오니즘에 비판적인 시오니스트였다. 한나에게 ‘-주의란 살아있는 경험이 주는 의미를 경시하는 이데올로기적 사상이 탄생할 수 있음을 알리는 위험신호였다. (p.153~154)

 

전체주의의 기원에서는 인종편견이라는 의견이 맹목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 어떻게 전체주의라는 급진적 새로운 형태의 통치제체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외로움이 모든 전체주의운동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외로움은 사유의 필수 조건인 고독의 공간을 파괴해 최악의 결론에 도달한다고 한다.

한나는 전체주의는 권위주의나 폭정, 파시즘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개개인을 철저히 개별화하고, 자발성 및 자유를 없애는데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공포를 도구로 이용하고 강제수용소를 짓는 행위야말로 전체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들이었다. (p.191~192)

 

인간의 조건에서는 현대 대중사회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구분하는 능력이 약화되었고, 그에 따라 상식이 무너지고 서로 공유하는 세계가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인간이 온전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적영역에 나아가 타인 앞에 서야 하고, 사유라는 걸 하기 위해서는 고독 속에서 사유하는 사적영역을 가져야 한다. 그 고독의 공간 안에서만 세속의 일들을 내적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다. '이 내적 경험은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의 일부는 우리가 함께 지구에 살고 공동으로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p.208)

 

한나의 그 외 저서들에 대한 설명과 그가 중요시한 인간관계가 상세히 소개되어있다. 그의 저서가 많은 논란을 일으킨 것은 그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유대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 형태는 무엇이든 모순이라 생각했기에 페미니스트도 기존 시오니즘도 거부했다. 그는 나치 혁명 당시 유대인 분리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그런 불합리를 수용한 시오니즘 지도자를 비판한 것이 아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유대인들로부터 비판받았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 흔들리지 않았고 자신의 사상을 꾸준히 펼쳐냈다. 물론 그녀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흑인 인권운동에 대해서도 인종이라는 정체성에 출발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던 그가 흑인이 놓인 특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비판한 점은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다분했다. 인간 사고의 중요성과 사유를 제대로 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강조한 그녀의 사상에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사회, 정치, 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한나의 평전을 읽고 나니 아직 읽어보지 못한 그녀의 저서를 겁 없이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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