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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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뤼트허르 브레흐만, 안기순 역,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김영사 2017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맘에 드는 제목이다. 약간 위트있는 느낌을 준다. 내용이 궁금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나 또한 제목이 맘에 들어서 골랐다. 책을 직접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그리고 어떤 추천이나 평가를 받고 있는 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다. 즉, 어떠한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채 몇 장이 지나기도 전에 책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보아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논증하는 책이다. 바로 '기본 소득'의 정당성과 효용에 대한 논증의 시도이다. 기본 소득은 최근 논쟁적인 주제이고, 기술 발전과 고용의 맥락에서 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미 이러한 주제를 다룬 몇 권의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의 출판년도가 최근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은 이 주제가 '핫한' 주제임을 보여준다.


 이 책의 주제가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효용을 논증하는 것이라면, 그 내용을 따져보기 전에 다른 것을 물어야 할 듯 싶다. 그 책들에 비해 이 책만의 매력이 있냐는 질문이다. 만일 여기에 답하기 쉽지 않다면 그저 그러 책이고, 답하기 쉽다면 나름의 매력이 있는 책이기 쉽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다른 기본소득을 다룬 책들에 비해 훌륭하다. 첫째로는 양이 그리 길지 않다. 참고문헌을 제외한다면 270 페이지 정도 되는 길이이다. 둘째로는 내용이 쉬우면서도 공백 없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기 쉽지 않은 것을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물론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그럴까?이런 주제를 다룬 많은 책들은 단순히 평등이라는 이상에만 몰두해 현실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른 가치들도 평등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중요성을 갖는 가치라는 사실을 잊거나 혹은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평등만을 외치는 주장은 설득력도 없고 현실성도 없다. 현실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가치들은 서로 타협함으로써 유지된다. 이를 무시한 채 하는 주장들은 공허하다.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보다 그럴듯한 논증들은, 따라서 더 세련된 형태여야만 설득력이 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보다 세련된 논증들은 기본소득의 구매력 제고를 근거로 들어 현실성을 포섭하려 한다. 자동화에 의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상이 심화되면,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 계층이 크게 위축될 것이고, 이는 경제에 다시 악순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많은 논증들은 이 때 대공황의 예시를 든다. 고용 없는 성장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성장의 유지와 경제의 번영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제도인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논증의 가닥들이 잠들어 있다. 이 가닥들을 따라가는 것도 하나의 독서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다른 근거들을 포섭한다. 이 점이 매력적이다. 물론 대중서인만큼 어마어마하게 독창적인 주장이 있거나 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자는 통상적으로 가질 편견들, 예컨대 기본소득은 근로 의욕을 저하시킬 것이라거나,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반대들이 설득력 없음을 경험적 데이터들로 보여준다. 


 나는 이 점이 이 책에서 제일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책 말미에 나오는 것과 같이, 정말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이 점을 간과한다. 특히 인문학을 성배로 삼는 '문화 좌파'들은 더욱 더 그렇다. 이들이 아까 말하는 '평등주의 이상론자'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설득하는 일은 단순히 이상을 말하는 데에 그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성공의 열쇠는 데이터에 있다. 명백한 데이터들을 무시하고 이념적 교조주의에만 몰두하는 이상들은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고 그리함으로써 설득력을 잃기 마련이다. 현재의 우리도 일부 레디컬한 종류의 페미니즘 운동이 그런 행동을 통해서 정작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을 보라. 그런 운동은 세상을 더 안좋은 곳으로 몰아넣기만 할 따름이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데이터와 논쟁들이다. 이 책은 그러한 양식의 설득의 클래식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앞서 나는 이 책이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효용'을 논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곰곰히 보면 지금까지 글은 기본소득의 '효용' 논증을 소개한 것에 가깝고, '정당성'에 대해 논하지는 않았다. 물론 평등에 대해 잠시 말하긴 했다. 그러나 평등이라는 가치에만 호소해 기본소득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평등이라는 가치 단독으로는 우리에게 어떤 것도 알려주지 못한다. 가령 평등에 호소해서는 모두에게 결과의 균등한 분배를 주장하는 맑시즘도, 혹은 최소한의 기회의 평등만을 주장하는 자유주의도 정당화될 수 있다. 기본소득 제도의 정당성은 평등에 호소해서만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추가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논증되고 있는지 잠시 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이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 기본소득이 필요할 정도의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가졌다고 해서 자신을 위해 적절히 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기본소득 제도는 정당성이 없고, 다른 복지제도들이 더 정당하다. (2) :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 정의롭지 못한 제도이다.(자유지상주의에 근거한 반대) 등. 다른 반대들도 물론 많지만 그런 반대들은 대부분 효용과 관계된 것이다.


 저자는 인지과학적 증거들을 들며 (1)이 적절치 못하다고 반박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로 가난이라는 상황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에 대하여 자세한 논증은 앨다 사퍼 & 샌딜 멀리네이션이 쓰고 이경식이 번역한 『결핍의 경제학』을 보라) 따라서 기본소득 제도는 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적절히 선택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제도이다.

 

 둘째의 반박은 깊은 역사가 있는 이념적인 주제이므로 굳이 여기서 다룰 이유는 없어 보이고, 나머지는 책에서 저자가 어떻게 현란한 솜씨로 기본소득이 정당하며 또한 효과적인 제도임을 설득하는지 직접 보도록 하자. 나 또한 상당히 설득당했음을 인정한다. 이것보다 더 나은 설명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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