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룸 - 초파리, 사회 그리고 두 생물학
김우재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우재, 『플라이룸』, 김영사, 2018 서평



 모든 사람들은 제각각이다. 모두 각자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특징들이 일반성을 포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도의 것은 아니다. 어떤 대상이든 다양한 범주를 가지고서 그 대상에 대해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정도는 가능하다. 이 책 또한,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과학 교양서, 과학자 - 특히 한국인 과학자. 생물학자. 행동유전학자. 

 

 그러나 동시에 일반성을 갖는 카테고리들 중에서도 더 특수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마지막에 언급한 범주인 행동유전학자가 아마 그러할 것이다. 과학 교양서. 특히 생물학에서의 과학 교양서 대부분은 진화생물학을 소개한다. 물론 그렇다고 진화생물학이나마 만족스럽게 소개가 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한국 과학 교양서 시장이 워낙 작은 탓이다. 요즈음 팔리는 대부분의 책은 페이지마다 글이 세 줄 밖에 없는 에세이이니 말이다. 여하튼 행동유전학자가 쓴 초파리 연구에 관한 소개서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종류의 책이다.


 단지 그뿐이라면 이 책이 갖는 특별함은 그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굉장히 특이한 이력과 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 김우재가 연구하는 주제는 단순히 행동유전학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생물학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이런 간학문적 주제들은 선행 연구를 따라가기도, 직접 연구하기도 어렵다. 한국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이 점 때문인지 이 책은 단순히 행동유전학이라는 하나의 분과학문(disciplinary)의 소개서가 아니라, 생물학의 다양한 연구전통 사이의 간극과 각각의 특유성을 그대로 담지한 채 서로 다른 전통의 과학들이 이렇게나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델 생물 간의 경쟁은 물론이고(쥐와 초파리), 초파리라는 모델생물 내에서도 크게 다른 연구전통들이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색다른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보통 과학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관심 없어 하는 주제가 과학사와 과학 철학, 과학 사회학 같은 것들이다. 사적인 취미가 있을 지는 몰라도 대부분 과학자들은 정확한 과학사에 대해 무지하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치열한 논문경쟁 하에서 취미 이상으로 과학사 공부를 하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 과학철학도 마찬가지다. 많은 과학자들이 포퍼를 제외한 과학철학자를 지적 사기꾼쯤으로 생각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책을 넘기면 보이는 바로 첫 장의 각주에서 이미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인용되고, 미국 실용주의에 대해 언급할 때는 그 분야의 고전인 <메타피지컬 클럽>을 인용하고,  빈 학파(vienna circle)을 이야기할 때는 칼 쇼르스케의 <세기말 비엔나>나 스티븐 툴민&앨런 재닉의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을 언급하지를 않나, 고인석이나 여영서 같은 국내 과학철학자를 인용하기도 한다. 이런 인용들과 언급들은 그리 길지 않은 책 속에서 수십 차례 등장한다. 나는 이점이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자가 본인의 전문분야가 아니라 그러한 분과학문이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분과에서 보여주는 매서운 통찰력이 유지되기는 어렵다.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소리를 하거나, 현실에 대한 고려 및 이해가 전무한 경우도 많다. 과학 전문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도, 그것을 실현하기에는 정작 과학자 본인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들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주요 주제 가운데서 틈틈히 언급되면서도 단단한 방식으로 그것을 구조화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일단 천천히 따져볼 만한 논증을 갖춘 주장인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이런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다.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특이한 스타일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