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만들어진 신화 - 신화는 출발부터 거짓이었다
황장수 지음 / 미래지향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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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삼한 오전, 여긴 칼바람이 불고 있다. 며칠 전 지인에게 받았으나 아껴두고 있다가 결국 한달음에 읽었다. 삼삼하니까 그냥 독후감이나 써 보자.

 

책을 받았다. 처음엔 박봉팔 닷컴에서 여러 기자들의 관련글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은 기사 하나 하나와 다르다. 짜임이 있다. 지난 글들을 잘 배치하는 것만으로, 그리고 집약해서 정리해 놓은 것만으로도 글은 스스로의 성격을 달리한다. 글의 묘미이기도 하다.

 

예언자 기자와 박봉팔 기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쓴 이에게 가장 큰 선물은 당연히 독자 소감일 것이다(푸하하). 이에 독후의 소감을 올린다.

 

 

1.

안철수와 관련된 주요 의혹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안철수의 행태를 뒤져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큰 발판이 될 것이다. 이 책 출판 이후 제기된 다른 의혹들을 덧붙여 가면, 안철수의 실체에 쉽게 다다를 수 있을 듯. 안철수에 대한 ‘묻지마 지지’처럼, ‘묻지마 반대’도 아름답진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다.

 

안철수의 이야기와 황장수의 이야기 모두를 품고서 스스로와 대화를 나눠보자. 다행히 이 책은 그 작업에 매우 요긴하다. 모호하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끔 저자의 ‘나도 이 부분은 궁금하다’란 고백이 있어 더 신뢰가 간다.

 

 

2.

안철수의 그 유명한 ‘동물원 비유’. 나는 그 비유가 매우 적실하다고 생각한다. 안철수는 동물원을 배회하며 먹이를 던져주는 사람과 같다. 안철수의 정치행보는 ‘동물원 행보’였다. 그가 정치 참여를 언표해 나가는 그 과정, 그가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그 과정이 모두 그러했다. 국민들은 안철수 현상 속에서 스스로 ‘관념과 진영논리의 우리’로 떼 지어 들어갔다. 왜? 안철수는 먹이를 보여주지 않고 냄새만 풍겼기 때문이다. 모호한 먹이, 그러나 무언가가 있을 듯한 느낌. 허기가 진다. 신기루가 보인다.

 

결국 관건은 그 먹이의 모호한 냄새와 껍질을 만드는 것과 그 먹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전자는 안철수의 언표에서 나왔고 후자는 안철수의 배후에서 나왔다. 결국 <안철수, 만들어진 신화>는 이 먹이가 만들어지고 알려지는 과정을 밝히는 책인 것이다. 그러니 <안철수, 만들어진 신화>는 결국 동물원에 관련된 책인 것이다.

 

 

3.

책을 읽으며 현재 시점, 책의 판매량이 궁금했다. <안철수의 생각>을 읽을 때 느꼈던 답답함은 그 내용과 구성의 짜증스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모호한 문체 때문이었다. 모호함 안에 숨어 있는 ‘심판자’같은 문체는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 이 책의 경우는 반대였다. 익숙한 글들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책의 문체가 저자의 심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되려 쉽게 내달릴 수 있었다. <안철수의 생각>과 <안철수, 만들어진 신화>를 동시에 읽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4.

책을 읽으며 조금 우려됐던 점은 ‘정황증거’로만 비춰지는 문장이 많단 것이다. 법적 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이 바닥의 ‘생태’를 모르는 사람들이 읽었을 경우 ‘추정’으로 단정하기 쉽다(특히 안철수 배후의 문제). 이 책을 읽는 - <안철수의 생각>을 사서 읽는 - 사람들에게 <안철수, 만들어진 신화>가 얘기하는 내용은 대부분 ‘다른 세상’에 가깝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경한 것에 대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이 넷상에서 비판 받는 주요한 이유다. 저자 역시 이런 상황과 자주 맞닥뜨리리라 생각한다.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안철수 현상’의 반작용으로 이 ‘생태계’가 알려지는 것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겠나.

 

 

그리고 시차 때문에 사실 관계를 다시 적시해야 할 부분도 있다. 얼마 전 예언자 기자가 직접 글을 게재했던 ‘최태원 회장 구명 탄원서 서명’ 부분이다(p.129). 안철수는 이 일로 ‘궁시렁 사과’를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당시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은 그 이야기가 나오기 전 출판 되었다.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미리 덧붙이면 좋겠다. 책의 출판 과정, 출판, 출판 이후 관련 조치들은 그 책의 ‘역사’가 되니까.

 

 

5.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생태’를 알려줬단 것이다. 무슨 생태? 한국 정치판의 생태, 재계의 생태, 언론의 생태, 정치판-재계-언론이 합심했을 경우의 ‘여론의 생태’.

 

이리저리 데구르르 굴러다니면서 이것저것 읽고 보고 활동했다. 이런저런 글에서의 ‘문자’와 세상이 굴러가는 ‘실제’의 거리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이후, 점점 더 벌어지는 그 ‘거리’에 놀라지 않게 될 무렵, 나는 내가 세상에게 지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더 잘 알고 싶었다. 한국의 ‘생태계’를.

 

어쩌다 발걸음이 삼청동에서 일정 기간 멈춰졌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 동안 그 생태의 한복판에서 살면서, 그 생태를 주름잡거나 참여하던 주역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미 ‘문자와 실제의 거리’에 놀라지 않았던 나는 그 생태의 주역들 역시 단지 한 명의 인간이고 어머니, 아버지, 가족, 친구, 딸, 아들, 뭐뭐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렇다. 나 역시 무언가의 함정에 빠져 있었던 거다.

 

결국 결론을 내렸다. 비슷한 인간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위에서 살아가도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살고 있는 세상은 다르다.

 

여러 세상을 바로 합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단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뭔가 억울한 것이다. 더군다나 뭣도 모르고 다른 세상을 우우우 하는 건 억울함을 넘어 어이 없는 일.

 

보이지 않지만 단단히 뿌리 박힌 이 벽 너머를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결국 지난 자신의 생각과의 싸움이다. 그 전장에 <안철수, 만들어진 신화>는 솔찮한 무기가 된다. 단돈 13,000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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