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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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기 전 역자 서문부터 내 가슴을 친다. 자발적 복종, 남의 이야기가 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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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 - 21세기에 다시 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일하 지음 / 궁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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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간간이 인용하면서도 후쿠오카 신이치가 지적했던 슈뢰딩거의 오류 즉 “생명은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는 것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임에도 후쿠오카 신이치의 오류교정 내용을 무시해버린 게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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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음의 엔트로피"를 소개하고 있는데 [page22] 이에 대해서는 후쿠오카 신이치가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슈뢰딩거의 오류를 아래와 같이 지적한바 있다. 

 

Erwin Schroedinger

생명이란 무엇인가 [궁리, 2009년판, page 120]

살아있는 유기체는 끊임없이 자신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혹은 양의 entropy를 산출한다고 말해도 좋다. 따라서 살아있는 유기체는 최대 entropy 상태, 즉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유기체가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오직 환경으로부터 음믜 entropy’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Fukuoka Sinichi

『생물과 무생물 사이』 page 132

슈뢰딩거는 이 부분에서 오유를 범했다. 이 생각은 너무나 순진했던 것이다. 사실 생명은 음의 entropy를 위해 음식물에 함유된 유기 고분자의 질서를 섭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물은 소화과정에서 단백질이든 탄수화물이든 유기 고분자에 함유되어있을 질서를 잘게 분해하여 거기에 함유된 정보를 아낌없이 버린 후에야 흡수된다. 왜냐 하면 그 질서라는 것은 다른 생물의 정보에 들어있던 것이며 자기 자신에게는 noise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본서의 참고문헌에 『생물과 무생물 사이』가 포함돼 있음에도 슈뢰딩거가 '음의 entropy'를 설명하는 방식 그대로 따르는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그걸 굳이 오류라고 지적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후쿠오카 신이치의 지적을 읽고 알게 된 터라 그의 방식대로 써줬으면 더 좋았지 싶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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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 - 21세기에 다시 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일하 지음 / 궁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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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후쿠오카 신이치의 책들을 읽으며 왜 한국에는 일반인들과 학생들에게 생물학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꾼이 없을까 아쉬웠는데 이 책의 목차를 보니 내가 기다리던 그런 책이다. 물론 구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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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 노자의 길과 장자의 길 사이에서
강신주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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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도 읽어봐서 아는데 저자의 노자 비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색다른 해석도 시각도 아니다. 견강부회가 심해서 저자의 반노자론은 철학이 아닌 소설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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