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K의 질문에 대해 누군가의 천재적인 능력과 범죄 본능을 한꺼번에 끌어낸 그 ‘기회’는 무조건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에술이든 기술이든, 어떠한 분야에서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 그 결과물을 만드는 동기와 과정에서 비도덕적이고 범법적인 행위가 있다는 것을 용인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그러한 측면까지 고민을 해야하는 것도 그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백성수의 입장에 있다면, 그 행위가 살인이나 방화보다 정도가 약한 비도덕적인 행위라 하더라도, 내가 만든 결과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하지만 그 결과물이 내가 간절하게 바라온 꿈을 이루게 해 준다면, 그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한 고민을 하고서도 나는 백성수의 행동을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창작자의 입장이 아니라도, 충격적일 만큼 아름다운 예술을 접하고 소비하였으나, 그 예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도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 소비를 완벽하게 끊어낼 수 있을까.
실제로 내가 즐겨 듣던 노래를 부른 가수나, 내가 좋아하던 개그맨이 과거에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였다는 걸 접한 후에도 겉으로는 그를 비판하면서도 그의 노래나 개그를 남몰래 소비해 본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그 기회를 저주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선뜻 그렇게 나서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 소설 내용 그대로 보았을 때, 방화나 살인은 도저히 용인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이긴 하다. 나는 그냥 방화나 살인이 아닌, 조금 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어떤 ‘기회’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천재와 함께 범죄 본능까지 끌어내었다 하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해야겠습니까, 혹은 축복하여야겠습니까." - P29
"죄를 벌해야지요. 죄악이 성하는 것을 그냥 볼 수는 없습니다." - P30
"백성수의 그의 예술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문화를 영구히 빛낼 보물입니다. 우리의 문화의 기념탑입니다. 방화? 살인? 변변치 않은 집개, 변변치 않은 사람 개는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천 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이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적어도 우리 예술가에게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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