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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사랑 - 에밀 졸라 단편선 ㅣ 북커스 클래식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BOOKERS(북커스) / 2025년 7월
평점 :
며칠 전 번역하는데 ‘대부분 사람은 걸어다니는 모순 덩어리’라는 표현이 나왔다. 책 추천을 부탁하며 책방에 찾아온 인물에게 주인장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는데, 《독한 사랑》에 수록된 에밀 졸라의 단편들이야말로 과연 모순 덩어리들이 제멋대로 몸을 흔들어대는 살롱 연회장이었다.
#에밀졸라 하면 이름이 졸라 특이하네? 정도 말곤 아는 게 전혀 없었고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옮긴이의 소개와 강력한 제목에 이끌려 구매했는데, 이 책에서 ‘누벨’이라 부르는, 대략 중편 소설 분량의 <낭타>, <네죵 부인>, <수르디 부인>은 배경이 되는 장면은 물론 인물의 감정, 심리, 표정 하나하나까지 너무 생생히 그려져 푹 빠져 읽었다. 와- 어떻게 이런 심리를 포착했지? 수준의 감탄을 넘어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어떤 복잡한 심경에 잠겨 독후감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감정을 정연하게 써낼 수 있는 자리로 건너오지 못하고 있다. 얘도 이상하고 쟤도 이상한데 왜 너무 알겠는지? 여러 차례 간담이 서늘해졌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따라가다 허를 찔리기도 하며 작가의 필력과 그에 걸맞은 번역의 중요성, 그리고 이야기의 힘을 절절하게 실감했다.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도, 그녀도, 이렇게나 복잡한 인간임을 머리로만 아는 사람으로 살아갔겠지, 생각하며.
특히 작가는 (확인 결과) 남성이었음에도 여성을 무척 복합적인 시선으로 관찰해 모순적인 측면을 세세하게 드러냈는데, <수르디 부인>에서 아델이 잠잠하게 끓어오르는 야망을 남편을 통해 실현해가는 방식과 그 심리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예술을 묘사하는 표현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인간의 본성과 계급, 돈과 관련한 허무와 냉소가 자주 드러났지만 (스포일러가 될까봐 대충 쓰자면) 파국으로 치달을 듯 말 듯하면서도 종내에는 인물이 죽지 않고, 젊은 날의 ‘좋은 경험’ 정도로 마무리되며, 어쨌거나 다 망해버리는 결말로 끝나기보단 어떤 여지가 남아있었단 점에서 작가가 나름 ‘다정한 서술자’로 느껴지기도 했다. 때마침 꺼내본 #올가토카르추크 산문집 #다정한서술자 여기저기 들춰보다가 내가 감각한 에밀 졸라 누벨의 특징처럼 다가오는 문장이 있어 함께 기록한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합니다. 한순간에 매력과 거부감을 모두 느낍니다. 사건을 곡해하고 오해할 때도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제시된 세계가 복잡한 질감과 다차원성을 획득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주관성입니다.” (224p)
파리지앵 일간지에 서너 줄로 요약되고 말았을 법한 상류층 스캔들의 ‘구체적인’ 이면과 심연을 예리하게 파헤친 소설들이 담긴 이 단편집은 마지막에 <죽음의 방식>이란 글을 배치해 저마다 아주 다른 모습지만 동시에 너무도 공평하게 맞이하는 죽음을 입맛 씁쓸하게 체험할 기회까지 선사했고 덕분에 다채로운 ‘인생들’의 바다에 푹 잠겼다 나온 기분이다. <옮긴이 후기>까지 정성이 가득가득 느껴지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