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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속죄-미나토 카나에
죄: 양심이나 도리에 벗어난 행위.
속죄: 물건을 주거나 공을 세우는 따위로 지은 죄를 비겨 없앰.
미나토 카나에의 작품을 처음 만난 때는 2009년 12월, 2학년 가을학기 마지막 시험이 끝난 금요일 오후. 늘 시험이 끝나면 마음을 비우기 위해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사는 것이 나만의 관례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지역은 규모가 작은 소도시라 서점들도 대부분 규모가 작아 평일의 이른 오후에는 인적이 드물다. 그래서 잠시나마 시험에 대한 걱정을 잊고,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 마음 놓고 책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로 나온 여러 신간들과 베스트셀러들이 기준 없이 뒤섞여 있는 책장 한 켠에 그 책이 꽂혀 있었다. 미나토 카나에의 <고백>,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일본작가의 소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책을 몇 장 읽어보곤 바로 구입한 후 집에 가자마자 피곤함도 잊고 쉼 없이 읽어나갔다. 독백문체와 어우러진 섬세한 심리묘사가 끝내주는 소설이었다. 인물 한명, 한명이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듯 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스토리와 미성년자의 범죄와 딸을 잃은 여교사가 복수를 하기까지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정말 강렬했다. 후에 <고백>이 그녀의 첫 데뷔작이며, 우리나라에 출간된 그녀의 책이 <고백>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척 아쉬웠었다. 그리고 그녀의 첫 작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약 한달 뒤, 그녀의 두 번째 신작이 나왔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된 두 번째 작품 <속죄>, 붉은 꽃들로 아름답게 수 놓여 왠지 모르게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표지에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이번 작품 역시 한명, 한명의 독백 문체로 진행되었다. 사건의 배경은 공기좋은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이 마을의 초등학교에 에미리라는 예쁜 소녀가 전학을 온다. 세련된 옷차림의 어여쁜 부잣집 아가씨 에미리는 모든 아이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지만 폐쇄적인 마을의 분위기 속에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부러움의 대상이며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은 에미리의 엄마, 에미리, 그리고 그녀와 마지막에 함께 어울려 놀았으며 그녀의 죽음을 목격한 동급생 사에, 마키, 유카, 아키코. 그 작은 마을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두 가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첫 번째 사건은 마을의 축제가 열리던 밤, 사에의 집을 포함한 다섯 가구의 프랑스 인형이 사라진 것. 두 번째 사건은 이 소설 속 핵심 인물들의 속죄의 발단이 된다. 어린 그녀들의 앞에 나타난 낯선 남자, 그리고 에미리의 죽음. 에미리가 죽은 지 3년 후 그녀의 어머니가 목격자인 네 명의 아이들에게 홧김에 던진 말 한마디가 훗날 속죄의 연쇄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속죄>는 독백 문체와 어우러진 인물들의 불안정하고도 위태로운 심리변화를 섬세하게 그리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말 그대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해서 충격적인 결말로 끝나는 이 소설은 흥미로우면서도 이 이야기 속에서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절대 가볍지 않다.
불완전한 인간끼리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완전함을 덮어버릴 정도의 우스꽝스러운 의식이 필요한 법이다. p.56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 체계를 가진 동물인지, 얼마나 망가지기 쉬운 존재이며, 불안정한 존재인지를 말해준다. 어린 그녀들에게 에미리의 어머니인 아사코의 말 한마디는 그녀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에미리의 죽음에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범인에 대해 자격지심을 갖게 만들었고, 결국 어떤 일들을 계기로 차례대로 ‘속죄’라는 이름아래 ‘죄’의 연쇄가 일어난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범인의 정체.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 아니면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속죄를 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난 너희들에게 복수할 거야.”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는 그 한마디가 어떻게 그녀들에게 그렇게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된 것일까? 에미리의 어머니 아사코, 에미리를 죽인 범인, 그리고 네명의 목격자 사에, 마키, 유카, 아키코. 그들은 왜 극단적인 결말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들이 한 행동은 죄인가, 속죄인가? 이들 중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독자들의 몫인 것 같다.
2010. 0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