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연한 고양이 문지 에크리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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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들은 한번쯤 상상해 볼 것이다. 만약 내가 글을 쓴다면? 나는 꼭 쓰고 싶은 대상들이 있다. 그 중 문학가들이 사랑과 조공을 바치며 결코 빼놓지 않는 비밀스런 아름다움의 대상이 바로 고양이라는 것! 10년째 고양이들과 살고 있지만 좋아하(고 비루하게 매달리)는 것과는 별개로 개들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과 가끔 낯선 이방인처럼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과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쓰는 작가들을 좋아하면서 가끔 질투나게 부럽기도 한다. 내 고양이들도 예쁘게 써주면 좋을텐데 이 놈의 집사는 그런 재능은 어디에도 없고 그런 책을 사재는 재능만 있다ㅋㅋㅋ그게 어디냐며ㅋㅋ

흰 장모종 '보리', 흰 털에 검은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얼룩무늬 '일다', 그리고 두 고양이의 동거인인 자신을 나가 아닌 ‘너’로 지칭하며 독립적인 개체로의 모습을 담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동거하는고양이가 사람 같기도 하고 사람인 '너'가 고양이였던 기억이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작가의 고양이 '보리'를 보며 심장기형으로 생의 절반을 아프다가, 영원한 2살로 멈춰버린 우리 새벽이가 많이 생각났고, 함께 동거하는 짱짱이와 애니의 냥줍하던 시절들도 하나의 점처럼 우뚝 기억났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늘 그렇듯 나만, 내것만이 아닌 함께하는 삶도 이야기한다. 동거하는 고양이들에서 시작해 서로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는 동거, 길냥이들과의 공존에 대해서도 감성에 빠지지 않고 담백하게 담아내 밀도가 높다.

밥과 물을 주고 잠자는 은신처를 주고 가끔 장난스런 괴롭힘도 주면 여지없이 깨물고 힘을 조절하며 툭툭 발로 치거나 하악-질로 보답(고양이의 보은?)하는 고양이를 보면서 그냥 흘려보냈던 관념적인 생각들을 이렇게 종이 위에 붙잡아 둘 수 있다니 과연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문지 에크리>는 자신만의 문체로 특유의 스타일과 스펙트럼이 있는 문학 작가들의 산문 시리즈다. 故김현(문학평론가), 김혜순(시인), 김소연(시인), 이광호(문학평론가)에 이어 이제니, 이장욱, 나희덕, 진은영, 신해욱, 정영문, 한유주, 정지돈 등의 작가군은 이미 소장가치가 있어보인다.

고양이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없지만 색다른 감각으로 특별함을 느끼게 해준다. 고양이와 동거하는 집사들 뿐만 아니라 '나만 고양이 없어'를 외치는 사람들도 '보리'와 '일다' 두 고양이를 만나는 동안 우연히, ‘너’에게도 운명의 고양이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끝으로 '보리'는 '볼 것이다'와 '보고 싶다' 사이에 있는 보드라운 질감의 말이라는 이름에 덧붙여 김훈의 <화장>에 등장하는 '보리'(개의 이름)처럼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불교적인 뜻도 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동물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기에 가끔 발칙하게 개종을 생각(만)하는 나는 보리가 다음에 무엇으로 태어나든 다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고양이들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때문에 수시로 공격을 당해 심장이 후천적으로 좋지 않다. 계속 아프고 싶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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