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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에 영화 읽기 - 김지씨와 다시군의 각본 없는 영화 수업 이야기
김병섭.김지운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8월
평점 :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 영화를 트는 공간이 있었다. 자치단위인 시네마테크라는 곳에서 학생들이 필름을 구해와 영화 한 편에 천원씩 받고 틀었다. 시네마테크 내부에서 빡센 영화 세미나를 한다고도 소문이 났었는데 과연 그럴 법하다 싶었다. 그 친구들이 주제별, 감독별 등으로 한주마다 틀 영화의 리스트를 정했는데, 그 셀렉션에서 나름의 내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영화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나는 자주 수업 빼먹고 영화를 보곤 했다. 스탠리 큐브릭,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나 <팻걸> 같은 페미니즘 시각의 영화도 다 이 시절에 봤다. 한편으로 학내에 ‘영화=운동’의 분위기도 있어서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들들 학생회에서 상영하곤 했다. <낮은 목소리>, <송환> 등은 그런 계기로 본 영화들이다. 20대 초반 무렵 나에게 이런 유의 영화 보기란 킬링타임보다 진지한 태도를 요청하는 참여에 가까운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멀티플렉스에밖에 갈 수 없으니 자연히 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영화들을 상업영화라고 한마디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웰메이드는 나름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갖췄고,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아주 익숙한 스펙터클로 풀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 점에서 할리우드 영화들도 내 영화보기 역사의 한 켠을 차지한다.
서점에서 <국어시간에 영화보기>라는 책을 발견했을 때, 제목에 들어간 ‘영화 읽기’라는 글을 보자 내 영화 읽기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게다가 나는 국어시간을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이것이 교사들의 수업 일기를 다룬, 어찌보면 나와 별 상관없는 것 같은 이 책에 손이 간 이유였다. 게다가 영화목록이 내가 ‘참여’의 태도로서 본 영화들의 목록과 상당히 일치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내 취향과 비슷했다. 이를테면 전자는 <브래스드 오프> <식코> 등이고 후자는 <렛미인> <인디에어> 등이다.
<국어시간에 영화 읽기>는 두 교사가 국어시간에 영화를 매개로 사회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와 컨셉이 비슷하다. 하지만 수업 현장을 담았기에 필자들이 보는 일방향의 시선과 부딪치는, 혹은 넘어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풍성한 영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완득이>를 본 한 학생이 “완득이를 힘들게 한 것은 이 사람들이 아니라 완득이네 가족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입니다”라고 소감을 말했을 때, 내가 교사였어도 무척 뭉클했을 것 같다. 또 아마도 1차 독자를 교사로 상정한 덕분인지 수업에서 나름의 지도 가이드도 제시한다. “이 책을 읽는 선생님들 중에서 이 부분에 꽂히는 분이 있다면 이 주제로 학생들과 깊이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다”라는 대목이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보고 막연히 너구리들의 변화에 대해 질문하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라고 대목이 그렇다. “너구리들이 인간과 싸우기 위해 자신들의 은신처로 가져온 물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너구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아마도 이 필자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한 제안이 아닐까 싶다.
비록 수업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지만, 두 교사가 영화의 줄거리, 주제, 수업 현장을 구어체로 풀어가고, 학생들에게 던진 미끼용 질문들에 나 나름대로 대답하며 읽다 보면 어느새 잡은 자리에서 다 읽게 되더라. 이지리딩이라는 아주 큰 매력을 갖춘 책이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에도 이런 수업이 있었다면 이 책에 나온 학생들처럼 격한 리액션 해가며 들었을 텐데... “우와, 완전, 대박, 졸라, 빡치네, 그겸, 노답, 약빨은! 레전드, 역대급, 졸잼, 꿀잼, 엄지척, 뜬금, 이뭐병” 이런 식?
책 마지막에 수록된 <렛미인>의 감상도 흥미롭다. 두 필자의 대화 형식으로 수록된 이 글은 둘의 교차하는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내 보기엔 둘 다 재밌는 시각이다.(물론 각 입장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 명은 외고 교사, 한 명은 인천지역 교사라는 다른 위치가 만드는 교실의 다른 수업 풍경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큰 미덕이라 느낀 것은 두 교사가 수업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고 본인들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한다는 점이었다. 나 학교 다닐 때의 교사란 그냥 철밥통 공무원으로만 비쳤고 수업은 죄다 입시 중심이었는데,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더 좋은 수업을 만들려 애쓰는 선생 둘이 있다는 게 반갑더라. “극장에 앉아 환상적 시간과 공간에 대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작품을 보는 것만이 진정한 예술 감상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현실과 맞부딪히며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작품을 찾으려는 마음가짐이 김지씨에게 있었는지 스스로 반성해본다.”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들, 또 조금이나마 영화로 아이들과 소통을 원하는 교사들에게 괜찮은 책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