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제국의 황제 레오 3세Leo III(재위 717~741)가 성상 숭배를 금지하고 성상도 우상이니 교회에서 모두 철거해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는 무모하게 행동한 레오 3세를 파문하며 영적 권위로 세속적 권위에 맞서는 첫발을 내디뎠다. - P203

치열한 삶의 무게와 피로에 지친 샤를 마르텔은 콩피에뉴 시 인근 베르브리 쉬르 우아즈Verberie sur Oise에서 병에 걸렸다. 그는 두 아들 카를로만Carloman(710?~754. 아우스트라시아 궁재 재임 741~747, 747년부터는 수도사로 지냄_옮긴이)과 피핀Pippin(714~768, 궁재 재임 741~751, 카롤링거 왕조의 초대 왕. 재위 751~768. 피핀 3세・단신왕 피핀_옮긴이)을 병상으로 불러 자신이 칼로 획득한 왕국을 물려주었다. - P204

우리가 첫 번째 왕조를 프랑크-로만 왕조라 부른 이유는, 프랑크족 정복자들이 (자신들이 세심하게 지켜온) 자신들의 언어를 계속 사용하면서도 처음에는 피정복민의 관습을 나중에는 피정복민의 종교까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72 물론 자유선거로 왕을 선출하는 원칙은 예외였다. 로마는 자유선거 원칙을 가끔 위배하긴 했지만 결코 폐지하지는 않았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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