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텔스바흐 합의와 민주시민교육
심성보.이동기.장은주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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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민들이 정치권력을 바꾸었다. 야당이 여당이 되고, 여당이 야당이 되었다. 권력만 바뀌었을 뿐 정치가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따져 정치를 하고 있다.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모르배 수준이다. 촛불시민들이 바꾸려했던 것은 정치권력뿐이었을까?

광장을 촛불이 가득 메웠을 때, 광장은 민주시민들의 학습장이었다. 정치권력이 바뀌고 광장에 촛불이 흩어지니, 토론의 학습장도 흩어졌다. 일상에서 토론은 보이지 않는다.

흔히 동창회에서는 정치와 종교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결론이 안 나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만 나빠져 동창회 분위기가 나빠진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다양한 사람, 정치적으로 다양한 사람이 모이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사회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서로 생각이 다른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핏대를 올린다. 그러다가 감정을 상해서 등을 돌리는 일을 자주 볼 수 있다.

 

다양성과 갈등은 동전의 양면이다. 다양성은 늘 갈등을 동반한다.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 이 갈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갈등을 통해서 서로의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 익숙한 사회가 민주시민사회이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갈등을 부추기고, 그 갈등 상황으로 인해서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고 보도한다. 시민들이 갈등을 불편하고 불안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오도하고 있다. 갈등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내가 근무하는 공립중학교에서도 갈등이 일어나면 불편해하는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교원위원의 숫자가 제한되는데, 제한된 숫자 이상의 교원들이 운영위원 선출에 입후보하면, 학교 관리자들(교장, 교감)은 숫자를 조정하기 위해서 물밑 작업을 진행한다. 그 이유는 투표를 하면서 선거하는 모습이 갈등으로 느껴지고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갈등을 불편해하는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은 가능할까? 쉽지 않은 문제이다.

 

변화를 위한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마다 불편함은 늘 마주하게 되는 것들이고,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갈등을 피할 수 없을 때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 변화를 멈추어야하는 것일까? 갈등을 드러내고 생각의 다양성을 확인하면서 합의를 통해서 최선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이후 지금까지 보수와 진보라는 갈등 프레임이 지속되고 있다. 보수의 뿌리를 친일 세력, 친일 세력이 색깔만 바꾼 반공 세력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일제에 협력했던 이들을 역사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이유로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이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해방 후 70여년이 흘렀지만, 갈등은 좌빨’, ‘일베와 같은 극단적 표현으로 여전하다. 그 갈등은 쉬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희망의 불씨가 되어줄 방법이 나타났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초한 사회 현안에 대한 논쟁 토론 수업의 제안이다. 지도자에 의한 강압(주입) 금지의 원칙’, ‘논쟁성 재현의 원칙’, ‘이해관계 인지 원칙에 바탕하여 사회 현안에 대하여 학습자에게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초한 논쟁 토론 수업을 이끌어온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이끌어온 세 명의 저자들이 그 동안의 민주시민교육을 위해서 노력해온 성과들의 일부를 모아서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민주시민교육라는 책으로 엮었다.

저자들은 독일에서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초한 논쟁 토론 교육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살핌으로써 분단 상황에서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초한 사회현안 토론 방법을 적용하여 가져올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자칫 논쟁 토론 수업이 빠져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예견하면서 그 어려움에 대한 조심스런 대처 방안을 제시하며, 논쟁 토론 수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교육 환경의 변화에 대하여도 이야기한다.

서울시교육청이 20176월부터 본격적으로 학교 현장에 적용하려는 보이텔스바흐합의에 기초한 논쟁토론교육은 아직 현장의 실천 사례가 많지 않다. ‘보이텔스바흐합의에 기초한 논쟁토론교육을 위한 교사들의 연수 현장의 열기는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민주시민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교사들의 뜨거운 열기는 아직은 바윗돌에 떨어지는 낙수 한 방울 밖에 안 되지만, 언젠가 그 한 방울들이 우리 사회를 민주시민사회로 우뚝 서게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진다. 이 책은 그 믿음을 현실로 나아갈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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