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보다 더 아래
김승일 지음 / 아침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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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 '지옥'을 검색하면 다양한 책이 나온다. 지옥사전, 신곡 지옥편, 지옥락, 전세지옥, 지옥에서 보낸 한철… 그러나 지옥 다음에 또 지옥이 있다고, 그 다다음의 지옥이 계속 있다고 말하는 책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지옥에 대한 모든 책은 어쩌면 지옥이 계속된다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전세지옥』이라는 책을 보자. 난 이 책을 읽은 적 없지만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전세지옥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현실이 지옥이기 때문에 지옥에도 전세금과 전세사기는 있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전세사기를 치거나 부동산 투기를 하는 인간들에게 걸맞은 무시무시한 지옥이 따로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인간들이 더 끔찍한 지옥으로 가게 된다 해도 여전히 모든 지옥은 전세지옥일 것이다. 현실이 여전히 지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옥은 현실의 다른 이름이다.

다음으로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는 책을 보자. 랭보는 이 시집을 통해 자신의 한철이 지옥이었다고 과장하는 한편 자신의 손으로 지옥을 끝내기 위해 인생의 이른 시기에 절필을 택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록된 그의 삶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지옥은 끝나지 않았고 말년의 침상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주변을 살피더니 울었다. 눈물 사이로 그가 말했다. "오, 맙소사! 내 머릴 누를 돌멩이 하나와 죽을 장소를 찾을 수 없을까? 아! 가고 싶지 않아! 여기서 나의 친구들을 모두 다시 만나서 내가 가진 것을 친구들과 당신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이자벨 랭보, 『랭보의 마지막 날』) 그렇게 랭보의 지옥은 끝났을까? 랭보는 아마도 절필한 자들이 가는 지옥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절필한 자들의 지옥에서도 다시 절필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을지도 모르지. 다음 지옥으로 가기 전까지.

『지옥보다 더 아래』는 어쩌면 이토록 지독하게 끔찍한 책이다. 어떤 사람들은 끝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김승일은 지옥 같은 말을 건넨다. "지옥은 언제나 하나 더 있을 것이다. 내말이 맞다." 나는 이 부분에서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나 또한 끝을 믿을 수 없다. 언제나 다음이 있을 것 같다. 나는 대부분의 자살자들을 친애하지만. 지옥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다르게 해볼 수 있다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하고 미미한 희망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지만 별수 없다…

스무 살인가 스물한 살의 여름이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나는 친구 둘과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우리의 자전거는 모두 미니벨로라고 불리는 작은 자전거였고 친구 한 명은 여동생의 자전거를, 다른 한 명은 어디서 고물 자전거를 빌려 타고 왔다. 그래서 속초까지 가는 데 6일이나 걸렸다. 첫 날부터 비가 내려 우비를 입었고 비와 땀과 구정물 때문에 몸에서 악취가 났다. 그날은 찜질방에서 잤다. 하루는 밤에 어떤 교회의 문을 두드리며 무작정 재워줄 수 있냐고 물었고 아늑한 방에서 잘 수 있었다. 그날 교회에서는 통곡기도라는 게 진행되고 있어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밤새 울려 퍼졌다. 또 하루는 시골 마을을 지나가다 컵라면을 사기 위해 마을 상회에 들렀는데, 거기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아저씨가 자기네 집에서 묵고 가라고 했다. 아저씨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가는데 차 안에 도끼가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를 집에 두고 다시 나가고 친구들과 나는 배가 고파 비상금을 털어 치킨을 시켜 먹었다. 자정쯤 술에 취한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우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친구들과 나는 차에서 본 도끼를 생각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해가 뜨자마자 집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도망쳤다. 자전거를 끌고 태백산맥을 넘다가 내리막이 시작될 때 멀리 속초 바다가 보여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것이 기억난다. 도착한 속초 바다는 아직 개장하지 않아 황량한 느낌이었고 친구들과 나는 모래사장에 잠깐 앉아 있다가 모텔에서 자고 다음 날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서울로 돌아와 각자의 집으로 갔다. 6일에 걸쳐 이동한 거리를 하루 만에 되돌아가며 무거운 피로 아래 우리는 거의 말이 없었다.

20대 초중반에 여행을 그나마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사서 고생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폭설이 내렸던 1월의 설악산에 친구들과 나 모두 등산복도 등산화도 아이젠도 없이 갔다가 산 중턱의 대피소에서 관리인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려가라는 말을 듣고도 그냥 정상까지 오르기도 하고. 혼자 제주도를 여행하며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기도 하고. 늦은 밤 올림픽공원에 몰래 침입해 토성 위에 누워 있기도 하고. 돈이 없어서 해외는 못 갔다. 그 험하다는 인도 여행을 가기 위해 초밥집에서 알바를 해서 200만원을 모았으나, 충치 치료와 엄마 수술비로 모두 썼다. 길 잃어버리는 일은 아직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때는 체력도 좋았고 낯선 풍경이나 책이나 영화를 보면 몰입할 수 있었고, 또 특별한 경험을 해야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지옥보다 더 아래』 추천사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책에 나오는 김승일의 생각과 경험 들이 나의 그것들과 꽤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김승일에게 시 쓰기를 포함한 여러 가지를 배우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를 만나기 전의 궤적들이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거의 모든 면에서 한술씩 더 뜨고 있었고 나는 아주 예전이었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뛰어난 예술가가 되려면 저 정도 기행 경험은 있어야 하는 걸지도 몰라. 지금은 너무 많은 것에 대하여 '그렇구나' 하게 된다. 창원까지 걸어서 온 김승일에게 그의 친구가 그랬듯. 30대가 된 나는 아마 예전보다 현명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명해진 나는 이제 낯선 풍경에 잘 감탄하지 못하고 책이나 영화를 봐도 잘 몰입하지 못한다. 사서 고생을 하려는 마음이 잘 들지도 않는다. 기대라는 것과 예전보다 멀어졌다. 현명해진 나는 더 이상 랭보를, 김승일을, 기타 등등을 동경하지 않는가? 김승일이 더 이상 헤어조크를 동경하지 않는 것처럼? 탁월한 예술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다른 환상을 취했는가? 더 솔직하게는 나 자신이 탁월한 예술가가 아님을 받아들였는가? 김승일은 자신이 동경했던 헤어조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데 그거 아세요? 이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사랑하는지도 몰랐죠? 근데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기분이 어떤가요? (…) 동경했어요. 이제 나는 아는 것이 참 많고, 죄책감을 아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어서 죄책감을 느끼는 건지. 당신 모르게 당신을 귀찮게 했던 일을 후회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알고 싶어요. 지옥으로 가야겠어요. 난 나를 사랑했어요. 괴롭혔어요. 내가 더는 그러지 않을까 봐 두려워요. 제발 내가 틀렸다고 말해주세요. 아니면…… 틀리게 되는 지옥으로 보내주든가."

슬프게도 나는 전보다 많이 현명해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현명해진 것에 대해 슬퍼할 만큼은 여전히 바보다. 모르겠다. 세상일을 보면 슬프고 화도 난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그렇게 느끼는지 확신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변명에 죄책감만 느끼며 고작 하는 일이 책 읽고 시나 일기를 쓰는 일뿐이다. 지옥에 갈 필요가 없다. 여기가 지옥이다. 그러나 영원처럼 먼 곳에서도 지옥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끝도 없이. 이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슬프다. 나는 지옥으로 걸어가고 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power7833/223349887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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