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대한 감상평을 남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런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나는 시보다 소설과 산문을 즐겨 읽는 사람이지만…""나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솔직해지자면 나는 소설도 산문도 뭔지 잘 모른다. 그냥 다짜고짜 읽는다. 그런데 유독 시에 대해서만 아쉬운 소리를 해 온 심보가 뭘까. 나 같은 독자 때문에 시를 대하는 각박한 인식이 더 불어나는 건 아닌지 괜한 염려까지 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런 구차한 말이 나올까 봐 내심 걱정했다. 외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뜻밖의 수확을 얻어 냈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 한 무더기였다.동료 시인들에게 점심시간에 만나서 함께 시를 쓰자고 권하는 시, 점심 산책을 하며 "사람들의 활기" 속에서 "세계를 메우고 있는 비참함"을 홀로 생각하는 시, 그와 반대로, 인파로 복작거리는 공원에서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햇살이 푸지면 나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된다"고 고백하는 시…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면면이 다채롭게 묘사돼 있었다.빛과 어둠을 대비시키는 표현들도 종종 등장한다. "나의 점심은 네게 한밤이었다"(백은선, 「향기」)는 시구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글 하나가 떠올랐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에서 엄지혜 작가가 '한낮'과 '대낮'의 차이점을 헤아려 보는 구절이었다. 청탁 메일을 보내느라 진이 빠진 저자가 '한낮의 우울'을 만끽한다는 내용의 산문인데, 나는 여기서 또 다른 엉뚱한 생각이 든다. '한낮'과 '한밤'과 '대낮'은 사전에 실려 있는데 왜 '대밤'이라는 단어는 없을까 하는…여하튼 다시 힘 빼고 처음부터 한 편씩 읽어 보다가 이 작품집을 관통하는 듯한 한 문장을 발견했다. 강혜빈의 「다가오는 점심」 중 한 구절이다."우리의 점심시간이 모두 에스에프 아닌가요?"
'점심' 하면 활기차고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먼저 떠오른다. 팬데믹 이전의 학교 급식실 혹은 회사원들이 몰려 다니는 식당가 풍경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하지만 점심 앞에 '혼자'가 붙으면 왠지 권태롭고 심심하다. 나는 '혼점'을 잘 하긴 하지만 '혼점'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모두가 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진 않을 것 같아서 점심에 대한 단상이 더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왔다. 제목처럼 혼자 먹는 것에 초점을 둔 글도 있었고, 점심 식사와는 무관해 보이는 듯한 주제로 쓰인 글도 있었다. 오히려 레시피를 소개하거나 먹는 행위를 묘사하는 데만 치우친 글들이 아니라 더 좋았다. 영화 리뷰를 곁들인다거나, 어떤 예술가의 일대기를 소개한다거나, 자신의 직업관과 인생관을 내비치기도 한다. 산뜻하고 익살스러운 내용부터 조금은 진중하고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글들까지 색깔이 참 다양했다.작가 특유의 관찰력이나 다정함이 엿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주변 테이블에서 들려 오는 이야기를 굳이 내치지 않고 귀 기울이고 싶어한다는 점. 나는 혼자 밥 먹을 때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 오는 잡담을 듣고 싶지 않아 무선이어폰을 착용한다. 안 그래도 따분한 혼밥 시간에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까지 듣다 보면 체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도 작가는 그런 이야기가 들리면 들리는 대로, 애써 귀 막지 않고 그들의 고충이나 만담을 기꺼이 흡수한다. 그러고선 자기 앞에 놓인 식사도 맛있게 해치운다.이 외에도 읽는 이의 공감을 살 만한 에피소드가 가득했다. 누군가는 상사로부터 바깥 밥 얻어먹을 바에야 혼자 구내 식당에서 밥 먹을 기회를 노리고, 또 누군가는 식사와 산책 중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어떤 결심에 이르기도 한다. 근무 환경이나 선호하는 식재료에 따라 점심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천차만별이다. 실린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았지만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골라 읽는 재미 또한 충만할 것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