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의 여행기는 재밌다. 백여년 전 여성의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되고 재기발랄한. 1927년 경성에서 기차를 타고 장춘으로 하얼빈으로 만주로 모스크바로 폴란드로 스위스로...국경을 넘어가며 쓴. '여름이면 다림질, 겨울이면 다듬이질로 일생을 허비하는 조선부인이 불쌍하다' -나혜석. 당시 서구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조선의 부인들의 운명을 진정으로 아파하는 심경이 여러군데. 그의 삶이 다만 자신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위한 파란만장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오래전에 잘린 나무 그루터기가 살아있는 이유는 주변 나무들이 그루터기 뿌리에 자양분을 공급해줬기 때문이라고. 이웃 나무들이 최대한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다고. 그 애정과 결합의 정도가 강한 숲일수록 더 오래 유지된다고. 숲이나 산을 걷다가 발견하는 살아남은 밑동은 그런 우정과 상호 연결의 결과라고. 이산하 시인은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의 거의 전편에 걸쳐 말하고 있다. 네가 살아남는 곳이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