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이언 바버 지음, 이철우 옮김 / 김영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복음과 문화, 신앙과 학문,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은 많으나 시원한 대답을 제시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에서는 지난 80년대부터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지금은 한풀 꺾인 상태이며 그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리차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정도가 그래도 여전히 고전으로 손꼽힐 뿐이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오늘 소개할 이안 바버의 책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하여 신선하면서도 명쾌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내가 졸업한 일반대 철학과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철학과내 자칭 '주류'라 불리는 한 부류는 맑스, 프로이드, 니체, 다윈을 추종하는 '골수' 유물론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신학예비과정으로 철학을 전공하며 '오직 성경'을 고집하는 '골수' 기독교인들이었다. 후자의 대부분은 과방에 얼굴을 내밀지도 않고, 교회나 선교단체 사람들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간혹 두 부류 사이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고 또한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말 그대로 '아직까지 방황하고 있는', 조만간 두 '골수'집단 중 어디엔가에 소속될 사람들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2년간 '방황하는' 사람이었고, 나머지 2년은 '골수' 기독교인이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모두들 고시 준비하느라 '골수'가 될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오늘날의 세속화된 문화와 첨단을 달리는 과학으로 인해 어느 정도 갈등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보수적인(근본주의적인) 신앙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안 바버의 책은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안 바버는 신앙인들에게 과학이 종교의 대적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해에 있어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유물론자들에게는 그들의 신념(유물론)이 과학에 근거를 둘 수 없음을 폭로함으로써 종교와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 나는 이안 바버의 책에서 '골수' 유물론자도 아니고, '골수' 기독교인(여기서는 근본주의적 신앙인을 말한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회하는' 사람도 아닌, 새로운 부류의 사람을 만났다: 대립적으로만 보이던 종교와 과학 사이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사람. 그 사람은 어정쩡한 위치에서 양편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중심에 서서 양극단을 포용하려는 사람이었다.

바버의 책은 나에게 문화와 역사뿐 아니라 자연과 우주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다. 내가 속한 신앙전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대과학의 첨단 이론들을 적극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새로운 발견과 이론들이 이제껏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던 어려운 신학적 질문들의 해결에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세속문화와 학문의 거대한 벽에 부딪혀 고립되고 사유화된 신앙영역 속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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