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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유치원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언제나 환영하는 안녕달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 <당근 유치원>이다. 초록 배경에 둥글둥글 곰 선생님과 시끌벅적한 꼬마토끼들, 함박 웃음 짓는 토끼들 속에서 혼자 잔뜩 뿔이 난 빨간 토끼. 표지 그림을 보자마자 책의 주제가 바로 느껴진다.
원래 표지는 초록 배경 그림인데, 내가 산 책은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연한 당근색 커버가 씌워져있다.(자랑) 뒷커버에는 당근 유치원의 일상을 그린 그림 4컷이 실려있다. 책 본문에는 실리지 않은 그림들이다.(자랑) 4컷의 그림 가운데 ‘좋아하는 친구에게 스티커를 붙여 주세요.’라는 제목의 사진이 무척 귀엽고 웃기다.(이것도 자랑) 표지 그림과 동일한 겉표지의 드로잉 노트도 함께 준다. 이런 거 잘 몰라서 동네서점 에디션 구입하느라 고생했다. 동네서점 에디션이지만, 우리 동네 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약 주문 형태로 진짜 동네서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도 책을 보니 예쁘고 뿌듯하다.
<당근 유치원>은 유치원에 처음 들어간 아이가 점차 적응해나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날 당근 유치원에 새로운 토끼 친구가 왔다. 분홍 토끼 친구들과 달리 혼자 빨갛고 뾰족뾰족한 토끼는 유난히 화를 자주 내고 친구들에게 거칠게 행동한다. 담임교사인 곰 선생님도 싫어하고, 유치원 활동이 재미없다며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다. 그러나 빨간 토끼는 자기 편을 들어주고, 언제나 잘해주는 곰 선생님을 점차 좋아하게 된다. 이렇게 선생님이 좋아지면서 빨간 토끼의 유치원 생활도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한다.
안녕달 작가의 탁월한 표현력과 세심한 관찰력이 빛난다. 똑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빨간 토끼의 달라진 반응으로 빨간 토끼의 유치원 적응과정을 보여준다. ‘목소리만 크다’와 ‘목소리도 크다’처럼 조사 하나만으로 느낌을 싹 바꾸기도 한다. 세종대왕님, 만세다. 우리집에 왔다가셨나 싶은 빨간토끼네 집 묘사도 구석구석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그나저나 이 집은 새끼가 셋이라기도 하지, 우리집은......
빨간 토끼가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집 꼬맹이가 어린이집에 처음 갔을 때가 떠올랐다. 아이도 엉엉 울고, 엄마도 엉엉 울던 시절. 그때 생각하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엄마와 함께 지냈는데, 그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며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품 안에 꼭 안고 있던 아이를 내 손이 닿지 않는 곳, 내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뒤돌아서야 하는 그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제는 어느새 우리집 꼬맹이도 더 이상 울지 않고 어린이집에 간다. 여전히 어린이집은 가기 싫어하지만 울지는 않는다. 아이가 울지 않고 어린이집에 가고, 낮잠을 자고 온 날, 또 한참을 울었다. 우리 아기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이렇게 또 한 걸음씩 세상으로 걸어가는구나. 남편에게 하소연해봤자, 잘 지내면 좋은거지 왜 우냐는 말뿐, 내 허전한 마음을 어찌 아실까요. 그래도 눈치있게 부쩍 자주 전화해서 살살 달래는 목소리에서 위로를 받는다.
우습게도 나는 아직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우리 아이도 지금 토끼반인데, ‘토끼반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슬쩍슬쩍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물어보니 토끼반 선생님이 좋단다. 아니 벌써! 엄마는 준비되지 않았다. 이런 말 할까봐 아직은 안 된다.
결혼은 안 된다! (화르륵)
집에 안 가.
난 선생님이랑 결혼해서 맨날맨날 같이 놀거야!
그래도 어린이집 가기 싫어서 우는 것보다, 어린이집이 좋아서, 선생님이 좋아서 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편이 훨씬 안심이 되겠지. 그때는 엄마도 한시름 내려놓고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생님도 곰 선생님처럼 우리 아이를 따뜻하게 봐주시는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 가득하겠지. 그런 귀엽고 흐뭇한 미래를 꿈꾸게 하는 그림책이다. 안녕달의 <당근 유치원>.
<당근 유치원>이 아이와 엄마에게 희망과 고마움, 안도감을 준다면, 선생님에게는 다시금 보람을 떠올리게 한다. 퇴근길, 지친 곰 선생님에게 비타민처럼 웃음을 주는 건 또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복작대고 부딪힐 때는 정신없고 지치더라도, 한 번씩 보여주는 예쁜 모습에 웃음이 터지고 다음날 출근할 힘을 얻는다. 빨간 토끼가 유치원에 적응하면서 책이 끝날 줄 알았는데, 안녕달 작가가 힘을 돋우고 싶어하는 대상은 아이와 엄마로 그치지 않는다. 그 시선이 곰 선생님처럼 포근하고 따뜻하다. 엄마들에게, 선생님들께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어려운 시기이다. 아이도, 엄마도, 선생님도 다 같이 모두 힘내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