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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최종태 지음 / 김영사 / 2017년 4월
평점 :
그가 겨냥한 것, 그가 이룩한 것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최종태 지음
<장욱진,나는 심플하다>는 한평생 장욱진을 스승으로 모셔온 조각가 최종태의 글이다. 화백이 살아 계셨을 적 깊은 인연의 끈을 유지해온 왔던 최종태 작가에 의해서 장욱진 화백은 글로서 다시 살아난다. <장욱진,나는 심플하다>는 남겨진 자가 추억하는 화백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책이다.
‘심플하지만 결코 심플하지 않은’
어느덧 장 화백의 탄생 100주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이미 가고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의 탄생과 떠남을 기억한다. 100주기라는 기념비적인 시간 앞에서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를 통해서 다시금 그를 떠올려 보고자 한다. 책 제목에서 다소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나는 심플하다!’는 장 화백이 생전에 심심찮게 외쳤던 말이라고 한다. 문장이라기보다는 간결한 외마디로 느껴진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있듯, 심플을 외치지만 그 속에는 결코 심플하지 않은 무언가가 담겨 있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세상 속에서 장 화백이 심플을 외친 것은 결코 심플하지 않은 무언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으레 경전이 성인의 말을 몇 단어와 문장으로 함축하고 있듯, 장욱진의 그림 속에는 모든 것을 다 비워내고 비워내어 알맹이만 남았을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알맹이가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종교와 예술이 함께 손을 잡고 발맞추어 걸어가며 자연의 길을 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작품 속에는 맑고 투명한 눈으로 바라본 자연이란 이상향이 있다.
‘爲道日損, 그림을 향한 길’
혹자는 장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저게 뭐야? 나도 그리겠는걸’이라 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순수하게 고백하자면 처음 그의 그림을 보고서는 저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 책을 덮고 그의 그림을 다시 보니 그는 작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성인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음이 느껴진다. 노자가 말하는 성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노자는 위도일손(爲道日損)이라 하였다. 매일 매일 비워 가는 것이 도의 길이라는 것인데,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보면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비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비우고, 화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탐내는 대작의 길도 거부하며 그는 소박하고 익숙한 것들에 주의를 집중한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강아지, 아침마다 지저귀는 까치들. 우리네 일상에 있는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도의 길과도 같은 그림을 그는 그려나갔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보면 그림을 그렸기보다는 그림을 만들어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홀로 외로이, 함께 다 같이’
장욱진 화백은 세속을 벗어나 자연을 향해 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여느 화가들과는 다른 노선을 걸어왔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직접 헤치며 걸어나갔다. 그렇기에 그의 길은 분명 외로웠다. 하지만 홀로 외로이 걸어가는 길목에서 그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외인들을 만날 수 있다.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는 장욱진 화백의 생애를 조명함과 동시에 조각가 김종영과 화가 김환기의 삶도 함께 비춰본다. 저자가 이들과 나눈 인연의 끈을 통해서 그들 삶을 만나볼 수 있다. 그 누구보다도 확고한 예술관과 작품세계를 펼쳐나간 이들을 보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혹은 시대가 만들어내는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각자 다른 길을 걸어 나갔다. 하지만 한그루의 나무들은 한 데 모여서 예술이란 큰 숲을 만들어나갔으며, 이 시대에 두 번 다시는 만나볼 수 없는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책장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기니,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이 절로 떠오른다. 장욱진 화백은 이미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남겨진 이들 또한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를 추억하고 있다. 탄생 100주기라는 기념비적인 시간 앞에서 그의 탄생과 소멸, 위대한 작품의 등장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책,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