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 여성 세계사의 변곡점 위에 섰던 비범한 그녀들의 강렬한 연설 50
애나 러셀.카밀라 핀헤이로 지음, 조이스 박 옮김 / 키스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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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간되기를 고대하던 책이 드디어 나왔다. 좋은 책은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부터 몰입해버리는 나는 숨을 고르고 중간중간 속도 조절을 해 가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씹어가며 읽어야 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연설문들을 뽑아 애피타이저부터 후식까지 다 훌륭한 성찬으로 내놓으면 도대체 어떻게 숨을 쉬고 먹으란 말인지. 내심 이 책을 기획한 저자와 출판사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내내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왜 다음 책에 대한 예고가 없냐며 다시 원망했다.

이 책은 표지에서 잘 설명하고 있듯이 '여성 세계사의 변곡점 위에 섰던 비범한 그녀들의 강렬한 연설 50'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읽으면 그냥 연설문 모음인 것 같지만 프롤로그부터 역자의 에필로그까지 52번 얻어맞으면 심장이 나대서 당최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후려친 텍스트가 있는 페이지에 태그를 붙여두곤 하는데, 이 책은 아끼고 아껴 붙인 태그가 30개가 넘게 붙었다. 독서관리 어플에 일일이 업로드하기엔 너무 많아서 할 수도 없었다. 이럴 땐 수작업으로 포스트잇 태그가 짱이지.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한 세대의 여성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자신이 바라던 바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름에 저항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항거해야 효과적인지, 어떤 방법을 썼을 때 실패했는지에 대한 앞선 세대의 경험도, 자료도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름이라는 벽을 돌파하려고 들면 온갖 난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녀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심지어 증조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런 상황이 이미 발명한 바퀴를 영원히 재발명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본다.

새로운 세대는 종종 이렇게 비난한다. 자신의 이전 세대가 행동하지 않았기에 지금 세상이 이런 꼬락서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를 뿐, 이전 세대 또한 젊었을 때는 나름 급진적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여러 제약과 마주했을 것이다. 그리 치열히 사고하고 온갖 부담을 감내하며 연구했는데도, 왜 우리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까지 물어야 하는가?"

바로 저 문장. '이미 발명한 바퀴를 영원히 재발명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본다' 라는. 우리는 꼭 다양한 활동의 영역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하곤 한다. 특히 치열한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지만 전혀 물질적 이로움은 보통 가져다주지 않는 사회운동 영역에서 우리는 쉬이 지친다. 그리고 앞선 세대를 쉽게 원망한다. 도대체 그동안 뭘 했어요? 왜 우리에게 진작 알려주지 않았어요? 라고. 그건 원망이라기보단 자괴감을 뱉어내는 것에 가깝다. 왜 이렇게 이 길은 고독하냐고.

이 책에서 반복되는 52번의 후려침은 사실 내내 도닥임이었다. 어느 챕터에서는 머리를 후려치고, 어느 챕터에서는 심장을 후려치고, 어느 챕터에서는 후련함에 잠시 눈물이 핑 돌았다가, 어느 챕터에서는 나도 몰랐던 부분들을 깨닫고 부끄러워한다. "그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하고 내 옆에 선 50명의 연사와 저자와 역자가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돌아가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토닥여준다. 넌 혼자가 아니야 라고.

첫번째 연사는 소위 말하는 걸크러쉬 라는 단어로는 감히 표현할 수도 없다. 엘리자베스 1세의 연설로 포문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 전투를 앞두고 "장군이 되어 그대들의 선봉에 설 것이며, 전장에서 벌어지는 시시비비를 공정히 가려 줄 것이며, 그대들이 전장에서 세운 눈부신 공을 치하하고 보상해 줄 것이다." 라고, "그대들끼리 반목하지 말 것이며, 용맹하게 전투에 임하라."라고 말한다. 지금 이 문장을 자판으로 옮기며 다시 막 소름이 돋은 나는 어쩌면 좋은가. 반해버렸어. 이렇게 대단한 분이 '내가 너희의 배후다!' 라고 등을 밀어주지 않는가.

페니 라이트는 "진실에 성별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노예 출신이었던 소저너 트루스는 사이다를 폭탄으로 던진다. "그런 기적을 행한 예수님은 세상에 어떻게 오셨소이까? 창조주 하나님과 낳아 준 여성을 통해서 아니오? 그럼, 여기서 남자가 한 일이 대체 뭐란 말이오?" 이 대목에서 난 너무 시원해서 웃다가 울었다.

넬리 매클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러링'의 방식으로 매니토바주 수상인 로드먼드 로블린 경의 연설을 풍자했다. 여성의 상냥한 성정과 모성을 근거로 여성의 참정권 취득을 반대한 로블린을 그대로 풍자하여 "남성에게 참정권을 준다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 주를 완전한 무절제와 방탕의 세계로 던져 넣는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는 항상 남성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해 왔으므로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중략) 유아용 의자에 앉아 수저로 주석 접시나 두드리는 여러분이 저처럼 정부를 운영하느라 바쁜 여성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시원한 일침을 날린다.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은 여성이 자기 개인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우리의 목소리를 달라고 요구한다.

"여성에게도 자기 주권은 타고난 권리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호받고 지원받기를 바라는 여성이 얼마나 있는지, 여성이 그러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얼마나 많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삶이라는 여정에서 홀로 항해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지키려면 당연히 항해의 법칙을 배워야 하지요. 배를 몰려면 선장, 조종사, 엔지니어가 되어야 하고,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타륜 옆에 서 있어야 하며, 바람과 파도를 살펴 언제 돛을 접을지 알아야 하며, 밤하늘의 별자리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홀로 여행하는 이의 성별은 이쯤에서는 이미 논할 가치조차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 이 글을 쓰고, 읽고 있는 지금도 우리 모두는 홀로 여행하는 중이며, 우리의 성별은 위기 앞에서 논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우리의 여정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본인권을 존중받아야 할 뿐이다.

이 책에서 뽑은 연사들은 선진국의 백인여성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위풍당당하게 등장한 엘리자베스 1세부터 시작해서, 푸에르토리코와 베네수엘라 이민자 후손인 LGBTQ 운동가 실비아 리베라, 필리핀 민주주의의 어머니인 코라손 아키노와, 12살의 나이에 유엔에서 환경과 개발을 주제로 어른들에게 호소한 세번 컬리스 스즈키에 이르기까지, 소수자의 인권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 환경보호에 걸친 다양한 의제로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목소리를 내어 온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 외로이 분투하고 있는 것 같다면 꼭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고맙게도 버릴 것 하나 없는 주옥같은 연설들을 모아 기획한 저자와, 우리말로 잘 소화해 씹어 삼킬 수 있게 번역해 준 역자와, 강렬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책의 몰입을 도운 그림작가 덕에 우리는 편안하게 앉아 이 시원하고 따뜻하고 눈물나는 도닥임을 받기만 하면 된다.

꼭 다음 책이 시리즈로 나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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