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들의 모험 문학동네 시인선 31
곽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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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그날 얼음폭풍이 덮쳤다
얼음마녀가 온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고 무겁게 입을 다문 채 폭풍을 받아들였지 달리 도리가 없었으니까 낡은 외투밖에 없었던 나는 너무 추워서 차라리 살을 뜯어내고 싶었어 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아팠지만 울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눈물은 뺨을 찢었으니까 얼음조각 하나하나에 나는 저주의 단어를 씹었다 죽을 때까지 망할 죽을 때까지 이 얼음폭풍을 미워할 거라고 했지만 두렵고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휘어진 나뭇가지처럼 죽지 않는 대신 굴복했다 얼음마녀에게 그날 얼음마녀가 왔을 때 나는 선선히 심장을 주었다 얼음탑에 예쁘고 안전하게 진열되길 바라면서 언젠가 다시 되찾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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