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네 - 교유서가 소설
하명희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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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교유서포터즈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한 편씩 끝날 때마다 짙어진 생각이 있다.

나는 불순한 마음 하나 없이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지.

내 삶의 일부분이 '전환' 될 만큼 열정적으로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베풀어 본 적이 있는지.

혹은 원래는 있었는데 점차 사라진 것이 아닌지.

무디어져 있던 나에게 『밤 그네』는 인간과 인간이 함께 얽히고 연대하며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값진 가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에 수록된 소설들의 공통점은 대상의 '부재'를 다루고 있음과 동시에 '다정'을 다루고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했던 대상의, 내 삶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대상을 잃고

아픈 시간을 거슬러 반추하고 되돌아본다.

이는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지만, 누구든 언젠가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다.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본능적으로 거부감 드는 필수적인 마음에 직면하는 기분이었다.

상실 앞에 놓인 인물들의 마음은 슬픔과 고통으로 요동치고 있다.


남겨진 이들은 서로를 붙잡으면서 울고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그 현장을 거슬러 반추하고 또 반추하다 마주한 고유한 마음이 잿빛이었던 세상 속에 환히 떠오르는 걸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함께 나눈 마음과 이야기들은 상실을 겪은 이들과 사회적 폭력과 억압을 받은 이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인간적이어야 한다.'

해당 문장이 내포하고 하고 있는 '인간적'인 인물을 소설들은 다양한 다정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년에 내린 눈」의 할머니와 두 여자들처럼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호의적인 태도로 서로의 주머니 속에 있는 걸 건네는, 어떻게 보면 작아 보이는 마음부터, 「먼 곳으로 보내는」의 진숙처럼 자신에게 잊지 못할 영향을 준 연숙의 아빠를 위해 남은 인생을 재가요양 간병인으로서 보내다 갔던 마음까지.

다정한 마음으로부터 만들어진 진심 어린 문장들은 아마 내 삶 속에 평생 잔상을 남길 것이다.

하명희 작가는 사람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대상을 향한 마음들에 대해 집요하게 바라보며 보여준다.

그 마음이 가진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받는 이에게 얼마나 값지게 남는지 말이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은 나도 어쩌면 은연중 한 번 이상은 마주한 적 있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가상의 인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와닿았을지 궁금하다.

인간을 살게 하는 인간의 다정함


수록된 소설 곳곳에는 다정이 발휘하는 힘이 실려있다.

같은 마음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탄생한 작은 세계가 누군가에겐 숨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

손을 건네고 말을 거는 행위만으로 죽어가는 생명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게 되기도 한다.

이토록 다양한 형태를 띤 다정들이 하명희 작가의 시선을 거쳐 서사화되고, 구체적인 형태로 묘사된 걸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먼 곳으로 보내는」에서 강하게 느꼈다.

"생리는 불편하고 힘들고 더럽고 귀찮은 거"라고 평생 인식하며 살 뻔했다던 진숙은 연숙의 아빠가 건넨 생리 축하 한마디로 연숙의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마음이 화자인 미숙, 연숙, 선숙 그리고 키가 컸던 연숙이 아빠를 평온과 행복이 가득했던 그 바다의 기억 속에서 평생을 살게 만들었다.

진숙의 자신이 "받은 좋은 것들을 돌려주기" 덕분에 연숙은 죽은 아빠를 보내주기가 너무나 아프고 괴로웠지만, 아빠의 발가락에 분홍색 매니큐어를 칠하며 웃으면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했던 그 여행의 바다를 평생 간직할 수 있었다.

모두 다정의 말 한마디로부터 피어오른 결과다.

지금 현재에도 타인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우리.

각자에게 있어 현재의 마음가짐을,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든 타인의 마음은 무엇인가.

각자에게 깃들어있는 고유한 마음이 누군가를 살게 한다는 것을 소설들은 확실하게 인지하게 만든다.

오직 다정한 사람들로부터, 그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으로부터.

간직하는 마음의 힘


결코 잊힐 수 없는, 잊어선 안 될 사건들과 기억들이 있다.

사회적 폭력과 멸시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연대라는 걸 소설들은 보여준다.

잊지 않고 간직한 마음이 발휘되는 순간, 상처받고 사라진 이들과 그들의 소중한 사람들은 치유받는다.

소설에서는 언급하기도 마음 아픈 세월호 사건, 이태원 참사 사건, 부마민주 항쟁을 겪은 이들이 등장한다.

소설은 아픈 기억을 겪고 살아남은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값진 마음들에 대해, 이를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마주하게 만들고, 애도의 마음을 담았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들의 무게를 담은 문장에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책을 모두 읽고 먹먹한 마음이 채 가시지 않아 교유서가 유튜브 채널에서 하명희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지난 만남을 되돌아보고 떠나보내는 발걸음들을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영상 후반부 한지혜 작가의 말씀처럼 『밤 그네』는 "하명희 작가의 강이 바다를 만나기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광활하게 펼쳐져야 될 마음들을 위한 책이다.

누구든 찾아가 볼 수 있는 바다의 생동감이 주는 아름다움처럼, 사라지지 않는 마음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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