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관해 본인같이 문외한인 사람들은 미술에 관한 책이라면 모두 소개서 내지는 어려운 비평서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본인 역시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부족한 미술에 대한 지식도 채울 겸 소개서로 인식하고 집어들은 경우다. 그러나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 책이 미술 소개서도 해설서도 아니라는 것이다.<나의 서양미술순례>는 지은이 서경식씨가 수없이 많은 유럽의 대성당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일일히 감상과 그 당시 심경을 기록해놓은 일종의 기행문이자 수필이다. 틀안에 갖혀 버린 명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찬 눈으로 미술을 재발견한다.책은 각각의 대성당과 미술관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작품들과 작가에 대해서 감상을 써내려가고 있는 데, 미술에 관한 전문가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지은이 개인이 느끼는 감상과 역사관,현실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해석으로 가슴에 깊숙히 와닿는다. 이러한 해석은 지은이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들까지 인간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미술과 역사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불행한 한국의 현대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한 재일동포 지식인의 슬픈 삶을 생각하며 독자들 역시 순례자의 길을 떠나야 할 것만 같다. 그림의 아름다움보다 그 속에 숨겨진 역사와 어두운 면을 살펴보는 지은이의 시선은 사뭇 감동적이다. 이제 이 책을 접할 당신의 눈은 어딜 향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