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마거릿 동화는 내 친구 45
토어 세이들러 지음, 권자심 옮김, 존 에이지 그림 / 논장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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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궁금했다. 어린이들은 이 책을 읽고 과연 어떻게 느낄 것인가? 왜냐하면 이 책에는 수 많은 냉소들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냉소의 시선을 간파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익살적인 장치로 느낄 것인가? 이 냉소적인 표현을 아이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이 이로울까? 아니면 숨겨야 하는가? 등등이 나의 의문점 이었다.)

 성인인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입꼬리가 삐뚤빼뚤해지는 것을 느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 책의 주인공 중의 한명인 '프레드'는 못되게 구는 '마거릿'을 보고 죽이고 싶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과거의 동화 책에서 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표현이다!) 또, '뱀' 은 잠든 '마거릿'에게 스컹크의 꼬리를 밟으라고 암시를 건다. (다음날 마거릿은 정말 스컹크의 꼬리를 밟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는 전반적으로 세상에 대한 냉소의 시선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유쾌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세계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미화도 왜곡도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책이 동화라는 사실이다. 과거의 동화에는 세계와 캐릭터들이 과장되게 반영되어 있었다. 절대선인/절대악인, 평화/혼돈 등등 이분법적인 사고가 동화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위에서 말했듯이 현실적인 상황과 캐릭터가 나타나고 있다.

*캐릭터 맛보기*

-프레드: 결벽증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우드척다람쥐. 남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한다. (사실 이 동화의 표면상으로 프레드는 꽤 까다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가장 무난한 동물이다. 자신이 피해보는 것을 싫어하며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꺼리는, 인간으로 치자면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적 캐릭터인 것이다.)

-피비: 상냥한 마음씨에 반짝이는 미소를 가지고 있는 우드척다람쥐. 프레드의 부인이며 남을 위한 희생정신이 투철한 것으로 동화의 표면상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았을 때는 꽤나 이기적인 캐릭터이다. 버려진 '마거릿'을 돌보는 일이 과연 마거릿만을 위한 일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모성적 본능에 도취되어 남편이나 다른 동물의 피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베풀지만 알지 '마거릿' 이라는 독립적인 개체에는 별로 큰 관심이(마거릿의 인성, 식습관 등등)없어 보인다.)

-뱀: 독신 시절의 프레드와 꽤 비슷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이 동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다르게 말한다면 이기적인) 캐릭터이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따듯한 애정적 교류를 그리워하고 있다.

-다람쥐: 피비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한마디로 선한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 다람쥐 친구는 목적없는 (피비는 이루지 못한 모성애적 사랑의 욕구를 가지고 마거릿을 대했다.) 선량함을 동물친구들과 마거릿에게 나누어 준다.

-허블부부 그리고 마거릿의 오빠 언니들......: 이 들은  매우 거칠게 묘사되고 있다. ( 솔직히 작가가 인간을 혐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허블가족은 매우 소비적인 식사를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들이 보이는 식탐은 인간 세계의 소비적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허블씨는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비대해 지는 바람에 사다리에 오르면 사다리가 부서지는 비운의 목수가 된다. 결국 그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면서 이 집은 엉망이 되어 간다. 허블씨의 아내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우체국에 일을 하러 나간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인 여섯.일곱.여덟이라고 불리는 '마거릿'의 오빠와 언니는 심술궂은 마거릿을 버리기로 한다. (이들은 마거릿을 해치우는 방법을 정할 때 쥐약으로 죽일까, 도끼로 죽일까 하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이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가족들은 마거릿을 잃어버림으로써 변화하기 시작한다.

-마거릿: 인간세계와 동물세계의 매개자인 이 폭군 아기의 설명은 끝에서 하겠다. 그런데 이 마거릿은 정말 못된 마거릿 일까?

 위에서 주요 캐릭터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나타나 듯이 위의 캐릭터 들은 우리가 기존에 보았던 동화 속의 캐릭터들과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특별히 선한 캐릭터 (다람쥐는 좀 착한 캐릭터에 속한다.)도 없고 특별히 나쁜 캐릭터도 없다. (사실 허블 가족을 매우 더럽고 거칠게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마거릿을 잃어버리고 변화한다.) 이런 캐릭터의 특징은 동화적 상상력(동물들의 의인화)만 없었다면 어른들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캐릭터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런 점들이 기존의 동화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던 시선인 냉소를 탄생시킨 것일까?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린이들에게 이 현실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아니면 어린이들의 무지개빛 꿈과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 이런 것들은 지양해야 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전자가 바람직한 것 같다. 어린이가 어른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직감적으로 여러 일들을 모두 느끼며 알고 있다. 그런데 구태여 현실세계의 어둠과 모순을 감추는 것 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그들이 직감적으로 느낀 실상을 알려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일찍부터 성찰하는 습관을 기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마거릿은 정말 못된 마거릿 일까?

 마거릿은 아기이다. 그녀는 허블부부의 무관심 속에서 자란 심술궂은 아이였다. 결국 그녀는 그녀의 오빠와 언니에 의해서 버려지게 된다. 피비와 프레드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던 마거릿은 자신을 도와주는 동물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는 커녕 더욱 제멋대로 행동한다. 인간세계에서는 무관심을 동물세계에서는 과도한 애정을 받은 마거릿. 마거릿은 적절한 애정을 받고 자라야 했던 아기였다. 하지만 이 두 세계는 마거릿에게 적절한 애정을 표하지 못했다.

 그녀는 스스로 배워나갔다. 동물들에게 못되게 굴다가 뱀의 계략으로 스컹크의 냄새 때문에 줄행랑을 친 마거릿. 인간세계로 돌아온 마거릿은 답답함을 느끼며 동물들에게 자신이 가했던 악행을 뉘우친다. 마거릿은 어느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돌봐줬던 우드척다람쥐의 망가진 집을 고쳐주고 손전등을 선물한다. 그리고 인간세계로 돌아간다.

 우리는 마거릿을 정말 못된 마거릿 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거릿이라는 존재는 인간세계와 동물세계를 변화시켰다.     

 마거릿이 사라짐으로 허블부부는 현재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 소비적인 식탐을 절제하자 허블씨는 다시 목수 일을 할 수 있었고,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좀더 돌 볼 수 있었다.

마거릿이 나타남으로 결벽증적이고 타인과의 접촉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프레드는 (글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뱀이 허물을 벗듯이) 변했다. 그는 다른 동물과의 애정적 교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마거릿을 정말 못된 마거릿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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