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의 에세이입니다. 처음으로 털어놓는 하루키 선생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키 선생께서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72세가 되셨네요. 인생의 후반기를 접어 들며 미루고 미뤄왔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드디어 쓰시게 되었습니다. 국어 선생님인 아버지와 결혼 전까지 국어선생님이신 어머니 사이의 외동아들로 자란 하루키 선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20여년간을 서로 소식도 없고 왕래도 없이 지내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온몸에 암이 퍼지고 당뇨병이 심해져서 요양원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찾아뵙고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루키 선생은 일본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고 정직하게 일본의 과거를 밝히고 일본 정부에 쓴소리를 하신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 침략도 인정하며 일본의 책임에 대해서도 언급하셔서 극우단체들의 협박도 많이 받았다고 하죠. 선생의 모든 소설 전반에 걸쳐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의 일본 침략에 대해 자주 나오는 내용들이 있는데, 이 에세이를 읽어보니 아버지의 일본군 복무 경험을 토대로 나온 이야기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과 비슷하게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상은 일본이나 우리나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 또한 양상이 매우 비슷해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들어보고 아버지의 기록들을 찾아서 아버지가 말씀해주신 것과 비교해보며 아버지가 평생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알아보기 위해 노력한 결과들이 보입니다. 좋든 싫든 가족이라는 혈연으로 연결된 관계에서 유전자처럼 선대에서 겪은 역사도 후대에 자연스럽게 전해진다고 선생은 말씀하십니다. 어렴풋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선생의 소설과는 다르게, 그리고 이전의 많은 선생의 에세이와고도 다르게 무척 덤덤한 어조로 사실관계와 감상을 차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