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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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성웅 이순신. 난 이러한 말들을 싫어한다. 국뽕이라고 하나? 이러한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리고 영화 <명량>도 싫었다. 마치 <국제시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얼마나, 무엇을 알았나 싶다. 물론 지긋지긋하게 세뇌된 덕분에 단편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 정도는 안다. 아직 12척이 남았다는,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등등...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알려진 이순신의 행적, 공적, 그리고 피상적인 선조와의 갈등, 아들의 죽음, 당시의 외교적인 상황, 그러한 것들을 베이스로 작가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그 사람의 마지막 2년의 기록을 소설로 완성했다.

이 소설도 그의 전공을 미화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고뇌, 가족에 대한 사랑, 임금에 대한 불신 등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어 마치 내가 그가 된듯한 착각에 분노하고, 좌절하며 어서 빨리 이 상황이, 이 생이 끝나길 바랐던 건 작가의 섬세한 묘사, 특히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탁월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 역사적인 사건, 인물 등 전체적인 틀에 작가적인 상상력과 이순신에 대한 작가의 존경심이 그를 위대한, 실제로도 탁월한 지휘관이었던 한 인간에 대한 오마주가 이 책을 세상에 나오게 했고, 교과서에, 문고판 서적에, 광화문 광장에 항상 우리 곁에 있었지만 외롭고 잊혀졌던 이순신이라는 탁월한 지휘관을 - 그의 인간적인 면은 알지 못한다. 다만 순리에 맞는 삶을 산 것은 맞는 것 같다 - 다시 현대에 소환해 그의 위대한 전과를 생생하게 각인시킨다.

소설은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풀려나 '백의종군'하며 남해로 다시 내려가는 장면에서 시작해 다음 해 무술년(1598년) 철수하는 일본군을 맞아 노량에서 전사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다시 수군통제사가 되어 전선 12척으로 적의 수 백 척의 적선을 물리친 '명량'에서의 전투, 아들 '이면'의 죽음, 명의 수군과의 갈등, 그리고 마지막 노량에서의 전사까지, 이순신은 끝없이 자신의 '사지(死地)'를 찾았고, 결국 본인이 원하는 '자연사'를 했다.

백성들과 부하들을 돌보며 자신의 안위보다는 나라를 위했고, 임금을 가엾이 여기었고, 백성 또한 가엾게 여기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듯 사사로운 혈육의 정보다는 부하들을 위했고 한때 통정했던 여인의 죽음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소금창고에서, 종의 숙소에서 아들을 위한 눈물을 흘렸고, 통정했던, 자신이 외면했던 그 여인의 몸을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냉철하고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않는 지휘관이었지만, 항상 악몽에 시달렸고, 아들을 그리워했고, 여진의 몸을 탐하던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고, 명나라의 오만방자함에 무기력을 느꼈으며, 일본의 침략에 적의를 느꼈다.

임금을, 백성을 연민으로 대했고,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 그래서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사지'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자연사'했다.

1. 김훈 작가의 글은 너무나도 세심하고 사실적이어서 사실 불편한 점이 많다. 냄새와 풍경 묘사가 특히 그렇다. 그의 글을 읽으면 냄새가 난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냄새도 있고, 모르는 냄새도 있다. 문제는 모르는 냄새도 난다는 점이다.

2. 그의 풍경 묘사는 자세하기도 하지만, 미학적이며 문체가 화려하다. 어떻게 여기서 이런 표현을, 또는 이렇게 생생한 묘사가 가능하구나라고 느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작가'라는 직업의 벽이 까마득하게 높아 보인다.

3. 이순신 장군의 '칼'은 어떠한 의미인가? 김훈 작가의 '칼'은 '펜' 또는 '글'인가? 나의 '칼'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 본문 중에서 -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속으로 불려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p 9 칼의 울음

* 박모(薄暮)(Dusk) - 저녁의 어둠의 시작으로 땅거미라고도 한다. 일몰과 혼동된다. 저녁 박명의 끝

* 박명 - 일몰 후에 잠시 밝고 푸른 시기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왔다.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주기를 나는 바랐다.

이원길이 돌아간 지 보름 뒤에 임금이 보낸 '면사첩'을 받았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p 44 / 57 / 60 / 110

전선들이 다가오자 연기 냄새는 더욱 짙었다. 죽은 여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물컹거리던 젓국 냄새와 죽은 면이 어렸을 때 쌌던 푸른 똥의 덜 삭은 젖냄새와 죽은 어머니의, 오래된 아궁이 같던 몸냄새가 내 마음속에서 화약 냄새와 비벼졌다.

p 137 누린내와 비린내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내 몸속에서 양쪽 다 울어지지 않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가장 괴롭고 가장 선명한 길을 칼은 가리키고 있었다.

p 151 그대의 칼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활을 당겨 표적을 겨눌 때 나는 내 어깨에 들러붙은 적을 느꼈고 칼의 세를 바꾸려고 몸을 돌릴 때 나는 내 허리와 무릎 속에서 살고 있는 임금을 느꼈다. 157

p 157 무거운 몸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

그해 겨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

그해 겨울의 밥은 무참했다. 끼니는 계속 돌아왔고 나는 먹었다. 나는 말없이 먹었다.

p 189 밥 / p 193~194 밥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p 294 서늘한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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