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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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장미의 이름>(읽어보지는 않았다)이 워낙 유명해 소설가로 알고 있었는데, 소설은 그냥 취미일 정도의 이력이었다. 기호학이 가장 유명한 주류이고, 철학, 미학, 언어학, 역사학 등의 만능 제너럴리스트였었다.

이 책은 잡지에 연재된 에세이들의 모음집이라고 하는데, 패러디가 주된 비평적이고, 비판적인 에세이들이다.

* 패러디 - 어떤 진지한 작품을 해학적으로(또는 풍자적으로) 개작한 것

* 파스티슈(Pastiches) - 어떤 대가의 기법이나 양식을 모방한 것

* 포스티슈(Postiches) - 가발이나 가짜 수염처럼 덧붙인 것, 인공적인 것, 거짓으로 꾸민 것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쓸 것을 미리 쓰는 것이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 줄 뿐이다.

p 10 프랑스어판 서문 중에서

이 책의 내용들 중 일부는(조금 많이는) 시대의 특성상 지금은 식상하거나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내용들이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아니면 그러한 부분들은 스킵 하면서, 또는 시의성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사소한 사물들, 당연한 듯 그냥 넘어가는 일들, 아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차릴 수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모든 일련의 일들, 이러한 것들을 작가는 비꼬고, 꼬집는다. 때로는 신랄하고 시니컬하게 때로는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생각되면, 책을 덮으면 되고, 작가의 관점에서 한 번 느껴보고 싶으면 또는 어떻게 묘사하는지, 어떠한 표현을 쓰는지, 생각할 거리가 필요하다면 붙들고 가볍게 읽으면 되는 책이다. 난 후자를 택해서 끝까지(끝으로 갈수록 어렵다. 전문적이고) 읽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이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1부 '실용 처세법'은 빠르게 변화하는 삶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기 위한 처세법을 유쾌하게 또는 통렬하게 비판하며 폭소 또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어 2부는 '성조기'로 공상과학소설의 형식을 빌린 미국(또는 강대국)을 조롱하는 내용이며 3부는 '카코페디아 발췌 항목'이다. 무지 어렵고, 다방면(수학, 과학, 철학, 기호학)에 최소한의 지식이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4부는 '내 고향 알레산드리아'로 작가의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회상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 카코페디아 - 그리스어의 <카코(나쁘다는 뜻)>와 <페디아(교육이라는 뜻)>를 합쳐 만든 것으로 <나쁜 백과사전>, <반지식 백과사전>등으로 옮겨질 수 있는 말이다.

발췌:

서문을 쓰는 방법 - 에코는 이 책의 서문에서 감사의 말을 안 쓴 이유를 이 글에서 참조하라고 했다.(조금 길다)

(······)

감사의 말은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도 보여 줄 것이다. 품격 높은 전문가라면 마땅히 감사의 말도 능숙하게 작성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집필을 마치고 나서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누구에게든 빚을 졌다고 꾸며대야 할 일이다. 빚을 지지 않고 이루어진 연구는 의심을 살 염려가 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 감사의 말을 바칠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내가 이 칼럼을 쓰게 된 것은 오랫동안 학술 출판에 관계해 온 값진 경험 덕분이다. 또 내가 학술 출판과 친숙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이탈리아 공화국의 교육부와 토리노 대학, 피렌체 대학, 밀라노 과학 기술 대학, 볼로냐 대학, 그리고 뉴욕 대학, 예일 대학, 컬럼비아 대학 덕택이다.

만일 사비나 양의 귀중한 협력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기고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 두 시경이면 담배꽁초와 찢어 버린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내 작업실이 아침 여덟 시가 되면 그녀 덕분에 깔끔한 모습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바르바라와 시모나, 가브리엘라에게 각별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 관심사와 동떨어진 갖가지 주제의 학술 대회에 참가하라고 대서양 건너편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그들은 내가 방해를 받지 않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애써 주었다.

내 아내의 한결같은 도움이 없었다면 이 칼럼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내는 존재의 중요한 문제들에 한없이 집착하는 한 학자의 기분과 무절제를 용케도 견뎌 왔고 지금도 잘 견디고 있다. 세상만사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그녀의 충고를 들으면 어두웠던 마음이 다시 밝아지곤 한다. 말로는 스코틀랜드산 최고급 몰트 위스키를 준다면서 언제나 사과 주스를 내게 주었던 그녀의 그 고집스런 배려는 나의 작업에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공헌을 했다. 이 글이 미약하나마 명징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건 바로 그녀의 배려 덕분이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일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애정과 에너지와 자신감을 줌으로써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일에 대해서 보여 준 아이들의 철저하고 초연한 무관심에 감사한다. 그 덕택에 나는 포스트모던한 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하면서 이 칼럼을 마감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워할 것이 또 있다. 그들과 가장 친하게 어울려 다니는 녀석들의 머리 모양은 나의 감성과 배치되는 미적 기준을 따르고 있다. 나는 우리 집 복도에서 그 녀석들과 마주치기보다는 차라리 서재에 홀로 틀어박혀 이 칼럼을 쓰고 싶었다. 그 완고한 의지가 내게 늘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글이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은 카를로 카라치올로, 리오 루비니,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리비오 자네티, 마르코 베네데토 및 <레스프레소>사의 여타 임원들이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밀비아 피오라니 경리부장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는 다달이 거르지 않고 도움을 줌으로써 나의 연구가 중단되지 않도록 해주었다. 나의 이 변변치 않은 칼럼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영업부장 귀도 페란텔리의 덕택이다.

본고를 작성하면서 올리베티사의 도움을 (······)

텔레비전에서 교수형 생중계를 보는 방법 - 사형의 반대자 입장에서 쓴 글

사형과 관련해서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다. 반대하는 사람과 필요성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텔레비전에서 사형 생중계를 한다면, 반대하는 사람은 만일 비위가 약하다면 텔레비전을 꺼도 된다. 만일 당신이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마땅히 사형수가 버둥거리고 껄떡거리고 지지직 타들어가고 소스라치고 움찔거리고 콜록거리다가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아야 한다. 사형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마치 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 - 이성 간의 성관계는 죽음을 유발한다 : 이성 간의 결합은 아이가 생긴다 → 누구든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

1. 자유직업 종사자들과 정치인들 : 실험적인 연극을 공연하는 작은 극장에서는 배우들이 튀기는 침의 사정권이다. / 국회 의원들은 마피아와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대부의 손에 입을 맞추어야 한다. 성찬식을 피해야 한다. 사제의 손가락을 통해서 병원균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질 수 있다)

2. 일반 시민 : 치과 의사와 접촉을 피해야 한다(다른 사람들의 입안을 뒤적거리던 손가락을 당신의 입안에 집어넣기 때문) / 하루에 담배를 네 갑 이상 피우는 사람은 이것저것 만지던 손으로 담배의 필터 부분을 만진다 그래서 병원균이 자연스럽게 호흡기 속으로 들어간다. /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단두대의 칼날이 사용 전에 소독되어 있지 않을 경우가 많다)

3. 제3세계 거주자들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

이카로스 - 한바탕 곤두박질을 치고 난 기분입니다

페르세포네 - 죽을 맛입니다

오이디푸스 - 질문이 복합적이군요

오디세우스 - 곧 돌아오겠소

에피메니데스 - 내가 그걸 말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게 될 거요

고르기아스 - 글쎄요

피타고라스 - 만사가 직각처럼 반듯합니다

히포크라테스 - 뭐니 뭐니 해도 건강한 게 최고지요

소크라테스 - 모르겠소

디오게네스 - 개 같은 삶이외다

플라톤 - 이상적으로 지냅니다

루시퍼 -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하느님이 아실 거요

케옵스 - 마음에 늘 태양이 가득하지요

세에라자드 -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단테 -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아벨라르 - 자르지 마세요!

아베로이스 - 잘 지내면서 잘못 지냅니다

에라스뮈스 - 미친 듯이 잘 지냅니다

데카르트 -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파스칼 - 늘 생각이 많습니다

프랭클린 - 벼락 맞은 것처럼 짜릿합니다

레오파르디 - 더할 나위 없이 잘못 지냅니다

만초니 - 하느님 덕분에 잘 지냅니다

자허 마조흐 - 하느님 덕분에 잘 지내지 못합니다

사드 - 좆나게 잘 지냅니다

칸트 - 비판적인 질문이군요

헤겔 - 총체적으로 보아 잘 지냅니다

마르크스 - 내일은 더 잘 지내게 될 거요

비트겐슈타인 -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낫겠군요

카뮈 - 부조리한 질문이군요

미시마 유키오 - 내 배가 텅 비어 있습니다

하이데거 - 바스 하이스트 게엔? (지낸다 함은 무엇을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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