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매일 철학 - 일상의 무기가 되어줄 20가지 생각 도구들
황진규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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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한때 폐인과 같은 안 좋은 의미로 쓰였던 단어가 이제는 제법 좋은 의미로 쓰인다. 덕질이라고도 한다.- 혹시나 해서 폐인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폐인도 덕질, 오타쿠와 비슷한 의미로도 쓰인다는 걸 알았다 - 한때는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였던 오타쿠가 이제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를 이르는 말이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생산적이고 순기능으로 작용했을 때의 일이다. 그렇다 '오타쿠' 또는 '덕질'의 좋은 예는 이렇게 관련 분야의 책을 낼 정도의 내공이 있다던가 또는 덕질의 결과물이 유·무형적으로 생산되어 재화를 창출한다면 가장 좋은 이상적인 결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의 저자와 같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덕질이 아닌 그 자체가 기쁨인 경우에도 심적인 만족감을 주어 자신의 생활이 즐겁다면 그것이 최선, 최고의 삶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20명의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실생활에 적용하기도 하고,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도 구한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나 자신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대한 철학자들의 혜안을 느낄 수도 있다.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앎'의 철학과 '삶'의 철학에 대한 저자의 의도대로 '앎'과 '삶'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어떻게 잘 조화를 시켜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유익한 책이었다.

1. 20명의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자들의 사상, 즉 서양철학사를 가볍게 흩어봤다. 그래서 - 지면도, 경제성도 고려했겠지만 - 심도 있지는 않다. → 관심 있는 주제나 철학자는 개별적으로 파고드는 걸로

2. 설명이 쉽다. 친절하게 예를 남발해서 어려운 이론도 쉽게 이해가 됐다.

3. 각 철학자 별로 '아는 척 매뉴얼'을 뒤에 두어 가볍게 읽다가도 핵심 사상에 대한 원 포인트는 호오가 갈린다.(개인적인 의견이다)

→ 원 포인트는 괜찮은 시도이지만, '아는 척'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contents

01.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데카르트의 '코기토'

선입견과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 바로 의심이다. 의심하면 된다. 내가 확실하다고, 옳다고 믿는 것들을 모조리 의심해 보자.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은 반드시 무언가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진리는 매우 확고하고 확실한 것으로써...<방법서설>

p 20

- 코기토(cogito) : '생각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cogitare의 1인칭 / 데카르트는 '의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만은 어떤 식으로든 의심할 수 없다'라는 확실한 사실을 발견했다.

02.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싶은가요? - 파스칼의 '허영'

왜 sns와 '셀카'에 열광하는가? "인간은 허영을 가진 심정coeur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 파스칼

- '심정' : "지금 울고 싶은 '심정'이야"라고 할 때 그 '심정'을 생각하면 된다. / 우리의 삶에 더 가까운 건, 데카르트가 아니라 파스칼이다. '이성'적으로 울면 안 되는데 '심정'적으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 허영(虛榮) - '비어 있는虛, 꽃榮

아름다운 외모에 집착하는 것만 허영이 아니다. 그 반대도 허영이다.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라 내면이야"라는 말도 때론 허영이다. 심지어 초야에 묻혀서 살고 싶다는 책을 쓴 철학자도 그 책에 자신의 이름이 빠지는 것은 참지 못한다.

03. 좋아하는 일로 성공할 수 있나요? -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스피노자는 욕망이 '인간의 본질 자체'라고 이야기한다.

* 코나투스 : 모든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이것이 '코나투스'다. / 코나투스는 인간의 정신에서는 '의지'로 드러나고, 정신과 육체를 모두 포함하는 온전한 인간에게는 '충동'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04.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 흄의 '동정심'

데이비드 흄David Hume - "착함은 동정심sympathy에 달려 있다" / '인과관계는 근본적으로 논증 불가능하다' / '세상에 자명한 법칙이나 진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진리.

흄의 '동정심'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한 뒤에 발생하는 나의 고통에 대한 경험(회상,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통 자체가 나의 마음에 직접 느껴질 수는 없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타인의 고통을 추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동정심'이 일어난다. 추운 날씨에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동정심'이 드는 이유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추위에 떨었던 유사한 '경험'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바로 착함이다

05.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요? - 칸트의 '아 프리오리'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 경험주의는 '참된 앎이란 이성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합리주의는 '참된 앎이란 경험이 아니라 이성을 이용한 덕분에 얻을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칸트는 참된 지식, 확실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 '아 프리오리a priori' : '선험적', '경험적'의 반대말. 즉, '선험적'은 '경험하기 전에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

- 연필, 볼펜, 사인펜이 있다. 이것들은 '필기구'라는 공통된 형식을 갖고 있다.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연필이냐, 볼펜이냐, 사인펜이냐는 경험을 통해야 알 수 있지만, '쓸 수 있는 어떤 것(필기구)'이라는 동일한 형식은 경험 이전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 이전의 동일한 어떤 형식이 칸트의 '선험적 조건'이다.

* '선험적 감성 형식' - '공간'과 '시간'

* '선험적 지성 형식' - '크다 - 작다' / '하나 - 다수'라는 '범주'는 경험 이전에 존재한다.

06.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 피히테의 '자아'

"나는 누구일까?" - "나는 자아다"(피히테) / 명제 'A는 A다(A = A)' → 나 = 나. 나는 나다 / A(밥) = A(밥) :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 때문에 A(밥) = A(밥)'일 수 있다.

자아(자기의식)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로 생각할 수 있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진 기억의 총합이다.

07. 꿈과 현실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 헤겔의 '변증법'

헤겔의 '변증법' - 정正 → 반反 → 합合

'정신(정)'원시 주거 공간' → 대상(반)'움막' → 정신(합/정) '더 안락한 주거 공간' → 대상(반) ' 기와집' → 정신(합/정) '함께 살 큰 주거 공간' → 대상(반) '아파트'

어떤 '정신'이 '대상'을 만들고, 그 '대상'이 다시 '조금 더 높은 단계의 정신'을 만드는 원환 운동이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 꿈과 현실은 양자택일해야 하는 모순적인 것이 아니다. 꿈을 꾸었을 때 비로소 현실이 보이고, 그 현실이 우리가 꿈을 이룰 방법을 드러낸다.

08.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요? -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

유물론은 '물질이 근본적인 실재'라고 여기는 이론 / 유물론자는 컵이라는 물질이 실재라고 생각하고, 관념론자는 컵을 보고 우리의 정신에 생긴 관념(컵의 이미지)이 실재라고 생각한다.

대상(성 - 호텔)을 규정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실천'인 것이다. /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노예가 된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실천'은 더 인정받는, 더 순종적인, 더 경쟁력 있는 노예가 되기 위한 실천이 아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실천이다.

09.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 니체의 '힘의 의지'

'꿍꿍이'의 철학자, 니체 - 니체 철학의 핵심은 진리라는 것 속에 어떤 것이 표현되거나 혹은 숨어 있는 것이 없는지 묻는 것이다.

고정불변의 본질, 본성 같은 건 없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그것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휘둘리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날이 선 비판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10. 생각하고 말해야 하나요? - 소쉬르의 '랑그'

* 랑그(langue) - 언어를 사용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

* 파롤(parole) - 화언 또는 발화로 번역됨. 어떤 말이 성대를 울려서 나오는 소리를 의미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도 랑그는 변하지 않는다. 소쉬르는 "랑그야말로 언어학이 다루는 대상이며, 모든 언어 활동의 사회적 규범이자, 사회적 제도"라고 말했다.

'전화기'를 '후하기', '턴하기'로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의미 - ☎를 '전화기'로 발음하기로 한 건 사회적 약속일뿐, 실제로 서로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를 '후하기'나 '턴하기'로 발음해도 파롤만 달라질 뿐 랑그는 달라지지 않는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소쉬르의 말처럼, 말(언어)이 생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11. 마음이 왜 마음대로 안 될까요? - 프로이트의 '초자아'

비합리적인 사람의 두 부류 - 1.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는 경우 2. "마음이 마음대로 안 돼"라고 말하는 부류

프로이트 - 인간의 마음은 '이드 - 자아 - 초자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드'는 본능이다. '자아'는 이드를 타이르고 달래서 현실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것. '초자아'는 사회적 질서, 규율, 법 같은 것

'이드'와 '초자아'는 항상 충돌한다. 그래서 자아가 둘을 화해시키고 절충한다.

우리가 자발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이 실은 초자아의 발현이다. - 부모와 선생의 훈육에서 비롯된 초자아이다.

임제 스님의 <임제어록>이 바로 '초자아'를 죽이라는 것이다.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이 있거든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p 185

12. 왜 시간은 늘 부족할까요? - 베르그손의 '지속'

베르그손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인간의 의식적 작업은 '시간'이 아닌 '공간'과 연결된다. 즉 '시간의 의식'은 어린 시절에는 없었던 고층 건물, 사라진 놀이터 같은 '달라진 공간'때문에 발생한다.

베르그손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두 가지 형태로 나눈다. 전통적이지만 왜곡된 시간 개념인 '공간화된 시간', 그리고 새롭지만 진정한 시간 개념인 '지속'

체험적 시간은 질의 영역이다. 나와 타자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다. 베르그손은 이처럼 '개별적으로 체험되는 시간'이 지속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13. 남자와 여자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 라캉의 '신경증'

얕은 관계로 지내면 상대를 잘 몰라도 잘 지낼 수 있다. 갈등과 다툼은 언제나 깊은 관계에서 발생한다.

라캉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명품 가방을 사는 그녀에게 라캉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네가 그 가방을 사고 싶은 이유는 세상 사람(타자)들이 그것을 원한다(욕망)는 사실이 무의식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명품 가방을 갖고 싶다면, 그 이유는 내 스타일이라서가 아니라 타자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욕구'는 언제나 '요구'를 통해서 표현되고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충족은 어제나 불충분하다. '욕구 - 요구'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다. 바로 여기서 '욕망'이 출현하게 된다.

남자는 대체로 '강박증'적이다 - 강박증자의 구호는 "내 맘대로 할 거야!"다.

여자는 대체로 '히스테리'적이다. - 히스테리 환자의 구호는 "네 맘대로 해"이다.

-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욕구'를 온전히 '요구'할 수 없어서 남겨진 결핍인 '욕망'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우리는 대부분 신경증자다. 남자는 '강박증'이라는, 여자는 '히스테리'라는 신경증을 안고 사는 존재다.

14. 일할 때 왜 주눅이 들까요? -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세상 사람들의 표상 체계'라고 설명한다. / 이데올로기는 세계에 대한 상상적 표상이지만, 각각의 개인에게 그것은 현실적 세계라는 말이다.

지금의 병적인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자본가적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주입했다. (······) 서글프게도 우리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일할 때 주눅이 드는 것이다.

15. 천직을 찾으면 행복할까요? - 사르트르의 '탈존'

사르트르의 '존재'와 '실존'

'존재' - 본질이 미리 정해져 있는 사물들이다. 가방, 연필은 존재다

'실존' - 실존은 본질에 앞서서 온다. 바로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존재'가 아닌 '탈존'인 이유를 무無에서 찾는다.

(내가 문제의 웨이터라고 한다면) 그 웨이터는 내가 되어야만 하고 동시에 내가 아닌 사람이다. ··· 설령 내가 나를 웨이터로 표상한다고 해도, 나 자신은 웨이터가 아니다. 나는 주체로부터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웨이터와 분리되어 있다. 즉 나는 무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이 무가 나를 그 웨이터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다. 나는 웨이터로 단지 연기할 수 있을 뿐이다. <존재와 무>

p 247

-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나'는 할 수 없이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를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 웨이터가 바로 '나'인 것은 아니다. 웨이터는 내가 되어야만 하고 동시에 내가 아닌 사람이기도 하다. 돈만 생기면 당장 웨이터를 때려치울 테니까. 단지 나는 웨이터를 연기할 뿐이다.

- 그래서 이 '웨이터 아닌 나'는 '무無'다. '웨이터 아닌 나'는 '웨이터인 나'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16. 계획 없이 살면 안 되나요? -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뢰르'

레비-스트로스 - '야생의 사고'는 우리(문명인)와는 전혀 다른 원주민들만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공유하고 있는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사고방식이다.

계획은 '야성의 사고'관점에서 보면 의미 없는 것이다.

'브리콜뢰르' - '손재주꾼' / 무엇이든 손수 만드는 일에 능통한 '잡역부'같은 사람 '장인'과는 구별된다.

17.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을까요? -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세대 차이? - 세대 차이 때문에 대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세대 차이가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에서 '언어'란 - 특정한 언어(영어, 독일어, 한국어 등)만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언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문재인과 심상정은 빨갱이야!"라는 언어 규칙을 가진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문재인과 심상정을 빨갱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문재인'과 '심상정'이 아니다. '빨갱이'다. (······) 그들의 삶의 맥락을 읽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들과 대화가 가능해진다.

18.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패러다임 - '사고방식의 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패러다임은 '자본주의'다.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을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 수용된 문제 풀이의 표본'이지만, 그것은 '어느 주어진 시대'의 산물이라고 했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자체가 바뀐다는 의미 -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을 대체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우리가 슬럼프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19. 자유로운데 왜 답답할까요? - 푸코의 '생체 권력'

'감시와 처벌' - '감금은 처형보다 인간적인 형벌인가?' / 보복은 길들임으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감옥은 단순한 '처벌 권력'에서 '길들임 권력'으로 변화한다.

'생체 권력' - 영화 <쇼생크 탈출>을 생각하면 된다. 평생을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흑인 노인이 화장실에서 하는 독백 "40년 동안 허락을 받고 오줌을 누러 갔다. 허락을 안 받으면 한 방울도 안 나온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육체와 내면이 이미 길들여져 있다. 집, 학교, 군대, 직장에서

20. 인생을 리셋 하고 싶나요? - 들뢰즈의 '아장스망'

'아장스망agencement' - '배치arrangement'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 유(부모)에서 유(아기)가 나오지만, 나온 유(아기)가 특정한 바로 그 유(나)가 되는 이유는 '아장스망'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특정한 유(존재하게 만든 유)들의 '배치'에 의해 단독적이고 유일한 바로 그 유로 생성된다는 것

씨앗(실재성) = 알맹이(현실성) + 꽃(잠재성) - 어떤 존재(실재성)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현실성) 이외에 앞으로 다르게 '생성'될 수 있는 잠재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

삶을 '리셋'하지 않아도, 아니 삶을 '리셋'하지 않아야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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