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 컬러판
생떽쥐베리 / 문예출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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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는 작은 외딴별에서온 어린왕자라는 한 소년을 통해서 본 순수함과, 우리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이다. 작은 별에 사는 어린왕자는 다른 많은 별들을 여행하게된다. 어떤 별에서는 자신만이 세상의 모든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왕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만이 다른 사람에게서 주목을 받아야 한다는 허영심만 가득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또 아무 생각없이 술만 마시는 사람과 오직 숫자만을 바쁘게 생각하는 장사하는 사람이 사는 별도 여행을 하게 된다. 또 다른 별에서는 끊임없이 일만 하는 사람이 살기도 하고, 실제적인 사물은 보지 못하면서 지식만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사람을 만났다가 결국 지구로 오게된다.

‘어린왕자’라는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또 읽을때마다 새롭다는 평을 받는 것은 어린 왕자라는 연약하고 순결한 어린이의 눈을 통해, 잊혀지고 소홀히 여기고 있던 진실들을 하나하나 깨닫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한 예로 어린 왕자가 만난 지혜로운 여우는 친구가 되자는 어린왕자의 제안에 친구란 어떠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는 말보다는 매일같이 자기를 보러 오라고만 이야기해준다. 말이 앞서는 우정보다는, 마음과 마음이 가까이 오는 우정의 방식을 여우는 택했던 것이다.

어릴적부터 몇번이고 읽었던 이 책을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처음 읽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깜짝 깜짝 놀라고 또 슬펐다. 숫자만을 생각하고 허영심만 가득하고 허상에 빠져있는, 실상은 지구의 어른들 모습인 다른 행성에서 만난 사람들을 조금씩 닮아가는 내가 놀랍도록 슬펐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어린왕자를 읽으며 다시는 슬프지 않기를... 다시는 놀랍지 않기를..... 정말.... 그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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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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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여성)들이 맨움(남성)을 지배하는 사회 이갈리아.이 책의 첫장을 넘겼을 때 느낌은 호기심 반, 짜릿함 반이었다. 현실사회의 성 역할이 완전히 뒤집혀버린 이갈리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여자의 입장에서 접하게 되는 짜릿함. 실제로 그 세계에선 움들이 일을 해 돈을 벌어오고 맨움들은 그들 움에게서 '부성보호'를 받으며 아이를 돌보고 가사일을 한다. 온갖 명예와 주도권은 모두 움이 가지고 있으며 맨움들의 역할이란 고작 순종하고 움들을 뒷바라지하는 일뿐이다. 우리사회 여성들이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듯 이갈리아의 맨움들 역시 '맨움해방운동'을 벌인다. 그들을 구속하는 옷 '페호'를 불태우고 의회에 진출하고.... 하지만 움들은 그런 맨움을 그저 하나의 성적 대상으로만 보고 무시해버린다.

슬프고 무서웠다. 우리 사회 남성들 역시 여성을 그렇게만 바라보는건 아닐까...?? 이갈리아와 같은 세계를 꿈꾸지는 않는다. 그 사회는 여남평등이 주장되는 또다른 불평등사회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건 이 책을 보며 '그래, 이런 책이 쓰여질 정도로 불평등한 세상이 한때 있었더랬지...' 하고 웃을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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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이청준 문학전집 장편소설 12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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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축제처럼 소설과 영화가 감독과 작가의 의논하에 같이 쓰여진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소설과 영화 축제는 사뭇 같으면서도 또 사뭇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딘지 모자란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감독과 작가가 의도하는 것부터가 다르다. 소설의 경우 아무래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보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모시지못한 죄스러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잇다. 하지만 영화는 죽은이를 보내는 장례식장의 질펀한 잔치분위기, 그리고 그 장례식에 참가한 사람들(특히 지식인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는데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준섭의 캐릭터도 영화와 소설에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속 준섭은 짜증나리만치 속물근성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그의 표정과 행동에선 전혀 슬픔이 느껴지지 않고 친구들을 대접하고 유명한 평론가를 모시는 등의 행동에선 노모의 장례식을 자신의 사회활동의 일환으로 여기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에 반해 소설에서 준섭은 늘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죄스러움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효자로 등장한다. 영화를 먼저 보아서인지 그런 준섭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고 소설에서 여러번 되풀이된, 자신을 매정히 떠나보낸 어머니의 손사래짓 이야기도 준섭의 자기 합리화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영화 축제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또 한명의 인물은 바로 용순이다. 영화속 용순은 너무 밋밋하다. 소설속 개성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소설에선 분명 용순에 대한 여러기억과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삼촌(준섭)에 대한 원망이 많이 그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속에선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였다. 영화만을 보았을 땐 용순이 준섭을 미워하는 이유가 단지 과거에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라고 느껴질만큼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다. 어쩌면 용순을 표현하기엔 그동안의 고전적인 오정해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축제를 읽은 사람들이 책이 잘 안 읽혀진다, 책장넘기기가 힘들었다는 말들을 한다. 아마도 중간중간 이야기의 흐름을 깨며 등장하는 감독님께 보내는 편지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영화와 소설이 같은시기에 제작된 특별한 경우라지만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면서까지 꼭 작가 이청준이 개입을 해야했을까?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임권택화된 자신의 시각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의도된 장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편지가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영화속에서 이 소설속 편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동화의 장면이다. 소설처럼 영화전체를 보는데에 불편함을 주지는 않지만 '효'라는 주제를 현실의 '죽음'과 대비시켜 너무나 뚜렷이 드러낸다. 뽀샤시한 화면, 배경음악, 그림으로 그린 배경등으로 현실의 장면과는 너무나 다르게 표현되어 어떤 괴리감마저 들게 만든다.

영화 축제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사망부터의 장례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하나하나 자막까지 넣어가며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도시에서 영화에서와 같은 장례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나 젊은 층들은 그러한 전통적 장례가 많이 생소할 것이다. 나같은 경우도 이 영화를 보며 단순히 곡을하고 상여를 메는것만이 다가 아닌 우리의 장례문화를 간접적으로 나마 접할수 있었고 또 장례절차를 알 수 있어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영화의 촬영장소가 실제 작가 이청준의 시골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속에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사실은 똑같은) 시골집과 동네 풍경에 영화보는 재미를 한층 더 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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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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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제목만큼이나 독특했다. 만약 내게도 콩스탕스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 아마 난 그냥 호기심 이상의 것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마치곁에 있는것처럼 가운까지 사 놓은 콩스탕스의 행동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ㄴ았으니까. 콩스탕스는 밑줄긋는 남자를 끝까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편이 콩스탕스에게나 나에게나 더 나을 것이다. 몽스탕스에겐 클로드를 만나게 해준 고마운 사람으로 밑줄이 그어진 책속에 남아있으면 되고 나에겐 수수께끼같은 그의 정체에 대해 ㄷ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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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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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씨 이야기와 향수의 분위기는 사뭇 같으면서도 사뭇 다르다. 딱히 말로 꼬집어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할 순 없지만 책을 읽으면 느낄수 있다. 이번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3권을 읽어보았는데 이 세권은 좀머씨 이야기의 느낌과 비슷한것 같다. 잔잔하면서도 또 그 가운데에서 오는 충격. 깊이에의 강요의 단편중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승부이다.

세상사람들과 세상을 체스한판으로 묘사한 쥐스킨트의 글에 놀랐고 체스 구경꾼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곤 또 한번 놀랐다. 정해진 틀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면서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욕구를 실편시켜주길 바라는 내 모습을 말이다. 장인 뮈사르의 우언은 약간 섬뜩하기조차 한 작품이었다. 처음엔 대수롭제 않게 보았던 돌ㅈ개인간의 변화모습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니.나도 결국은 돌조개 인간이 되어 죽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약간은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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