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70대 아버지 때려 숨지게 한 40대 영장”

인터넷 뉴스 창을 여니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사건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딸을 방치한 부인을 살해하려 한 30대 남편의 이야기도 있고, 세 살배기 아이를 폭행한 보육교사 기사도 나온다. 하루 치 기사에도 슬며시 눈을 돌리게 하는 사건이 넘쳐난다.

《대하의 한 방울》의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는 1932년생으로 나이가 여든이 넘었다. 이 노작가와 그의 아내는 아침마다 신문 기사를 읽으며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얼마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는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일본의 신문 사회면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을 터이다.

두 번이나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말로 책의 서두를 연 작가는 패전국가의 피난민으로 겪은 경험을 되새기며 지옥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겸허하면서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책은 5개의 화두로 되어있다. 첫 번째 화두 <사람은 모두 대하의 한 방울>은 사는 동안 무기력해지고 맥이 빠질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적고 있다. <창랑의 물이 탁해질 때>는 굴원의 고사를 인용하며 온통 탁해진 이 세상을 굴원처럼 한탄하며 이상을 지키며 살다 투신한 삶도 존경받을 만한 삶이지만, 물이 탁하다면 발을 씻으면 된다는 어부의 삶도 공감한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 화두는 <반(反)상식의 권장>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극도로 발달한 현대의학에 왜 의지하지 않는지, 작가가 왜 병원을 찾지 않는지를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일지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심야 라디오 이야기>는 NHK 라디오로 방송되었던 내용을 묶은 것이다. 마음의 내전이라 표현한 ‘자살’ 문제, 근대화를 목표로 물질의 풍요만을 바라고 달려온 지난 세기,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한 건강함 등에 대해 차분하게 작가의 생각을 들려준다. 또, 방언이나 수다스러움 등 우리가 고치고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해온 ‘말’과 관련된 자세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 마지막 화두는 <오닌의 난이 주는 메시지>다. 전쟁과 기근이 없다고 평화의 시대로 착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현대는 많은 사람이 마음의 내전을 치르고 있는 암흑시대임을 직시하라고 한다.

간략한 책 소개만으로는 머리 아프고 지루한 책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 호흡의 이야기가 여러 편의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묶여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에세이마다 붙어 있는 제목은 한 편의 내용을 축약하고 있어 중간 쉼표를 찍으며 정리를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또, 죽었다 깨어나 본인 시신 입술에 묻힐 탈지면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할머니, 치석투성이 이를 가진 건치 노인, 극한의 남극생활을 하면서도 면도를 하고 아침인사를 건네는 매너남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다보면 죽음의 무게, 몸과 마음의 균형, 고통과 절망 등 무거운 주제도 쉽게 깨닫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바쁜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화두는 공허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 삶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지옥 같은 삶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다독인다. 지옥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있는 곳이라 대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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