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1월
평점 :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기숙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내는 소년들이, 서로를 쉽게 믿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혼란스러운 시기에 겪어내는 여러 마음들을 잘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다. 작품성을 인정받는 영미 문학계의 대표적 성장소설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교우관계에 고민이 많은 시기인
청소년에게 강하게 추천할 만한 소설이다.
엉뚱하지만 늘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재주를 가진 피니. 운동 신경이 남달리 좋다는 점은 소년들에게 가장 호감을 주는 장점이다. 수영장에서 비공식 교내 신기록을 피니가 세운
둘만의 비밀.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바닷가에서 함께 잠을 자고 해돋이를 본 추억. 독자들도 그런 친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나무타기는 원래 소년들의 호기어린
놀이다. 소설 속에서 피니와 진은 나무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는 놀이를 하는데, 상급생들에겐 어뢰 공격을 당할 경우 수송선에서 탈출하기 위한
훈련이었다고 한다. 전쟁은 학교의 규칙과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만, 남은 학생들에겐 전쟁이 오히려 덜 긴장된 일상을 주기도
한다.
나무 위에서 가지를 흔들어 단짝
친구를 떨어뜨린 사건은, 진과 피니에게, 전쟁처럼 모든 것을 변화시킨 사건이었다. 견제를 하고픈 혼자만의 착각으로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저지른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려운 마음으로 병문안을 갔지만
오히려 자신의 안색을 걱정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을 깨닫게 된 진의 괴로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스탠폴 선생의
‘운동은 이제 끝이야’라는 말은 피니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다. 사건 이후 일상은 별다른 일없이
흘러가는 듯 보였고 피니가 돌아온 후에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사실 진의 마음속에선 순간순간 고통이 찾아왔을 것이다. 진이 군대에 가려고 한
것도, 삶의 패턴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기도 했겠지만 사실 피니에 대한 마음의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더 컸을
것이다.
전쟁은 없다며 제 밥그릇을 뺏기고
싶지 않은 뚱보 노인네들이 모든 걸 날조했다는 피니의 말이 인상적이다. 대공황과 식량 부족도 조작이라는 그 말을, 진이 몽상이라 치부해버린
것처럼 대부분 그냥 흘려 넘기겠지만 작가가 넌지시 흘리는 고발이라 볼 수도 있다.
자신을 다치게 한 범인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피니. 친구의 행동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게 되자 필사적으로 말을 만들어내며 진을 위해 변명을 해주는 상황이 눈물겹다. 사건 당시
주변에 있었다는 래퍼는, 아이들 앞에 불려온 자리에서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상황을 즐기며, 궁금하지도 않은 나무 주위에 반짝이던
햇빛을 묘사하며 긴장감과 짜증을 고조시킨다.
엉뚱하고 무모하고 으스대기
좋아하지만, 어른들의 규칙과 자신들의 규칙을 구분할 줄 아는 소년들의 행동 양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여린 약자에 대한 미묘한
상하관계는 늘 순식간에 발생한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요령을 터득하여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피니처럼 어느
규칙에서도 예외가 될 수 있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면 말이다.
묘사하듯 수식하는 단어가 많지만
결코 지나치지 않은 표현들, 과장하지 않으면서 순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독자의 공감에 다가선다. 그래서 절제되었지만 깊이 있고 생명력이
넘친다는 호평들이 나왔을 것이다.
'보일 듯 말 듯 서서히, 마치
악기 하나에 이어 다음 악기가 슬며시 연주에 동참하듯, 온갖 색들이 횃불처럼 환하게 하늘을 밝혀왔다', '심지어 그가 더는 억누를 수 없었던
동요하고 자극받은 자의식에 공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의 가장 뛰어난 면모를 내내
무시해온 것 같은 아득하고 쓸쓸한 감정을 느꼈다' 등등 내용의 흐름에 상관없이 감탄스럽게
만드는, 깊이 있고 아름다운 문체가 독자를 사로잡는다.
(문예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http://cafe.naver.com/hanuri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