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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밝은 쪽으로 걷자
윤두열 지음 / 일레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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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무수한 시간을 탕진하지만, 정작 생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기록하지 못했다며 후회를 점철하여 흘려보내곤 한다. 본 작품의 문장은 그 흘러가는 시간의 뒷덜미를 다정하게 붙잡아, 기어이 ‘빛이 번지는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이 책은 단순히 읽히기를 기다리는 기록물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태워 타인의 어둠을 밝히려는 어느 정직한 영혼의 ‘마모(磨耗) 보고서’이다.

01. 실패한 시간의 유증(遺贈), 빛의 할레이션

[P.30] 아주 먼 미래를 약속하면 그 마음에 빛이 스며들기 마련이지. 때마침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린다면 그 약속은 더 강렬해지고. 오래된 필름으로 세상을 담으면 기어이 빛이 번지고 말아. 시간을 거스르려다 실패한 사람처럼. 누구나 지나치는 인생의 어떤 중요한 순간을 관통할 때에 그 지점에서 아주 귀한 걸 잘 챙겨온 것처럼.

작가는 낡은 필름 카메라로 세상을 담듯 생을 관조한다. 시간을 거스르려다 실패한 이의 뒷모습에서 그는 절망이 아닌 ‘귀한 것의 회수’를 본다. 미래를 약속하는 순간 마음에 스며드는 그 찰나의 광휘는, 비와 눈이라는 생의 불순물을 통과하며 더욱 강렬한 채도로 각인된다. 그것은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해진 사진처럼, 오히려 경계가 허물어졌기에 가능한 구원이다. 그가 말하는 ‘밝은 쪽’이란 어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어둠과 빛이 서로의 몸을 섞으며 만들어내는 그 찬란한 번짐의 영역이다.

02. 고독의 수혜(受惠), 밟히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영토

[P.32] 몽골을 여행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몽골 사람 들은 길을 걷다가 실수로 누군가의 발을 밟으면 먼저 손을 내밀어 발을 밟힌 사람의 손을 잡아준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외로운 날이면 수없이 발을 밟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몽골의 초원에서 길어 올린 ‘발을 밟는 행위’에 대한 사유는 이 책의 정서적 백미다. 누군가에게 발을 밟히는 통증이 손을 맞잡는 환대로 치환되는 그 찰나의 연금술. 작가는 외로운 날이면 차라리 수없이 밟히고 싶노라고 고백한다. 이는 타인이라는 타자성이 내 세계를 침범할 때 발생하는 파열음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지독한 사랑의 선언이다. 자꾸만 주는 나라에서 그는 결핍을 채우는 법이 아니라, 기꺼이 받는 자의 겸허함이 어떻게 행복의 문을 여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문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타인에게 당신의 발등을 내어줄 용기가 있는가.

03. 존재의 정박(碇泊), 시간이 다른 시간으로 전이되는 기적

[P.59] 몸과 마음이 같은 곳에 있으면 행복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래.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면, 마음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거지.
몸만 여기에 있고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 있다면, 다른 생각을 하느라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 순간은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 사라져버리는 거야.
우리가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래.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보자.

몸과 마음이 같은 좌표에 머무는 상태를 그는 ‘행복’이라 명명한다. 이는 흩어진 영혼의 파편들을 지금 이 순간이라는 좁은 병목으로 불러 모으는 수행에 가깝다. 그 집중의 끝에서 탄생하는 사랑은 물리적 법칙을 초월한다. 한 사람의 시간이 다른 사람의 생으로 부서짐 없이 전이되는 사건. 그것은 존재와 존재가 서로의 역사를 통째로 삼키는 경이로운 침식이다. 작가는 사랑을 통해 ‘나’라는 한정된 시간이 ‘너’라는 영원으로 확장되는 숭고한 전이를 목격하게 한다.

04. 흑심(黑心)의 미학, 뭉툭해질수록 깊어지는 영혼의 필사

[P.222-223] 이 글을 적는 지금, 내 연필의 길이는 얼마만큼 남아 있을까. 나의 흑심은 뭉툭한지,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뾰족해지려 열심히 연필만 깎고 있지는 않은지, 별것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며 얼굴을 붉히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느 날 이 페이지를 읽고 있을 당신도 한 번쯤 자신의 연필이 얼마나 짧아져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세상 바깥으로 튀어나온 흑심의 모양이 너무 뾰족해서 어딘가에 긁히며 상처받거나 누군가를 찌르고 있지 않는지. 삶의 더 많은 장면들을 기록하느라 흑심 끝이 둥글둥글 뭉툭해져 있는지를.

가장 시린 울림은 연필의 길이를 묻는 대목에서 온다.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날카롭게 벼려온 ‘뾰족한 흑심’은 결국 누군가를 찌르고 자신마저 부러뜨린다. 하지만 삶의 비루함과 경이로움을 묵묵히 기록하느라 닳아버린 둥글고 뭉툭한 흑심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다. 짧아진 연필은 소멸의 증거가 아니라, 그만큼 뜨겁게 생을 써 내려갔다는 훈장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뾰족함을 버리고 기꺼이 마모될 것을 권유한다. 둥글게 뭉툭해진 마음의 끝단이야말로, 생의 가장 부드러운 속살을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05. 결사 : 우리라는 이름의 빛나는 얼룩

저자의 글은 매끄러운 대리석이 아니라, 수천 번의 발길질에 닳아 반들반들해진 흙길을 닮았다. 그는 우리에게 완벽한 지도를 건네는 대신, 함께 길을 잃고 함께 닳아가자고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가 밝은 쪽으로 걷는 이유는 어둠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빛 속에서 서로의 뭉툭해진 어깨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당신의 연필이 짧아진 만큼 당신의 영혼은 깊어졌을 것이고, 당신의 필름이 번진 만큼 당신의 기억은 따스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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