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은 절집 -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
심인보 글 사진 / 지안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시간이 날 때 마다 훞쩍 길 떠나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 여행지로 가장 좋은 곳은 역시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서 배어나는 오래된 절집들이다. 절로 가는 길의 구불구불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숲길의 향기와 풍경들이 정답고, 절 앞에 이르러 하얗게 바래져 가는 단청빛이 너무 고와 한참씩 숨 고르기를 해야하는 그런 적요로운 순간들이 좋아 자꾸만 절집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3월 말에서 4월 초순의 '화암사' 오르는 길은 들꽃의 향연이다. 보라빛 '얼레지'... 어느 땐 고개 숙이며 팔을 한 껏 뒤로 올리고 춤을 추는 발레 동작처럼 보여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얼레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싸아한 슬픔이 우선한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리 하늘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푹 고개숙인 모습으로 두 손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하고 있을까, 저리도 고운 모습을 하고서... 바라보는 내내 애틋하고 서러운 마음이 드는 꽃이다. 그렇게 예쁜 얼레지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청보랏빛 현호색과 흰빛, 보랏빛의 제비꽃, 하얀 개별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있어 계곡을 따라 화암사까지 오르는 길이 내내 행복한 곳이다. 그런 화암사를 시작으로 화순의 쌍봉사까지 이어지는 곱게 늙은 절집들의 순례를 따라가는 길이 읽는 내내 행복하였다. 

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없지만, 그저 오래된 절집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과 함께 혼탁한 속세를 잠시나마 떠나 있다는 느낌이 들어, 적요로우며 세월의 향기와 품격이 느껴지는 절집들을 찾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아 그저 그 곳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한없이 평화롭고 마음 편안해졌던 많은 절집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관광지로 변하고 편리함과 개발의 이름으로 새로 고치고 새로운 건물들을 지으면서 예스러움을 잃어가는 곳을 바라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곱게 늙은 절집에 나오는 대부분의 절을 좋아하고 몇 번씩 찾아가지만, 가보지 못했던 곳을 알게 되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 책에 나온 절집들 중에서 가보지 못한 곳은 꼭 찾아가보리라 마음 먹는다. 그리고 이 곳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우선 생각나는 곳으로, 절까지 오르는 길이 아름답고 절 또한 편안한 곳으로 곡성 태안사와 순천의 금둔사, 구례 지리산의 천은사, 여수의 향일암 등을 꼽고 싶다.  

절집을 바라보는 시각과 느낌들이 저자와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아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다. 오래되고 곱게 늙은 절집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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