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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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시에르 저, 허경 옮김,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인간사랑,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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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로 자신이 폭행의 피해자라고 하여 프랑스 사회 전체를 숨막히게 만든 여인; 학교에서 이슬람교도의 히잡 벗기를 거부하는 여학생들; 항상 적자 상태인 사회보장 보험; 바칼로레아 시험 주제의 변화(보다 근대적인 사상가들로); 기존의 연금제도를 수호하기 위해 시위하는 봉급생활자들; 빈곤층 학생들 대상의 입학할당제를 도입한, 전문 엘리트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텔레비전의 리얼리티쇼; 동성인들 간의 결혼과 인공수정을 통한 인간 생식(19).  

위와 같이, 전혀 달라 보이는 21세기 초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러한 현상들의 원인을 민주주의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는 ‘근대적 대중사회 속의 개인들의 무제한적 욕구가 지배하는 사회체계(20)’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민주주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20).  

이 책은 고대 플라톤 철학에서 오늘날 밀레르(Jean-Claude Milner)의 ‘범죄적 민주주의’론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가 어째서 증오의 대상이 되었는가에 대해 논하는 정치평론집이다. 본 리뷰는 각 장을 중심으로 랑시에르의 중심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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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키워드는 범죄적 민주주의다. 21세기 초,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들은 이라크와 레바논에 민주화를 가져왔다면서,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중동 민중들의 과도한 정치적 흐름을 혼란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모순에 대해, 랑시에르는 쟝-클로드 밀레르(Jean-Claude Milner)의 ‘범죄적 민주주의’론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하나의 사회형태(이기적 개인=탐욕적 소비자=민주주의적 인간)로 축소시켰고, 민주주의를 인류학적 재앙으로 규정하였다(63). 왜냐하면 그들은 민주주의 확대에 따른 지적 엘리트들의 기득권 상실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범죄성은 자신들의 더 이상 지적 스승, 목자(牧者)가 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거부에서 기인한 것이다.  

2장의 키워드는 정치의 탄생이다. 구성하는 권력인 정치(la politique)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랑시에르는 대표적 민주주의 증오자 플라톤의 담론을 빌려, 정치(민주주주의)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플라톤은 통치의 자격을 크게 7가지로 구분 지었다. 6가지가 출생과 능력에 따른 자격이라면, 7번째 자격은 우연성에 의거한 자격, 즉 제비뽑기(추첨)다(95). 하늘로부터 부여된 통치권자인 신성 목자(牧者)가 사라진 시대에, 통치에 대한 자격은 누구한테 있는 것일까? 여기서 플라톤의 역설이 발생한다. 원로정치, 금권정치, 철인정치를 거부한다면, 정치권력은 통치자의 자질도 피통치자의 자질도 가지지 않는 자들의 권력에 기초해야 한다. 따라서 우연성에 기초하는 통치와 만나게 되는 역설이다(108). 정치는 곧 민(民)의 권력으로 존재하며, 민의 권력은 지위, 능력과 무관한 것으로서, 아무에게나 귀속되는 권력이다(111). 결국 랑시에르는 정치(민주주의)의 기초를, 아무런 기반을 갖지 않는 통치권력, 곧 통치 불가능성에서 찾는다. 

3장의 키워드는 민주주의, 공화주의, 대의제다. 상식적으로 공화주의와 대의제는 민주주의의 일부로 간주된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민주주의, 공화주의, 대의제를 구분 짓는다. 우선 대의제는 민주주의와 상반된 개념으로 과두제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민의 권력을 거부하는 제도다(118-120). 둘째, 공화주의 역시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공·사 영역,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영역을 엄밀히 구별 짓는다. 공화주의의 평등은 만민이 평등한 산술적인 평등이 아니라, 자질이 우수한 자들이 부족한 자들 위에 서는 기하하적 평등이다(138).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자연적인 결과로 만들어지지 않고, 결코 사법-정치적 형태의 체계가 될 수 없다(122).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사유화에 반대하는 투쟁이자 공공영역의 확대과정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국가 내부와 사회에 대한 과두제적 이중 지배를 보장해주는 공·사 영역 분리에 저항하는 투쟁을 의미한다(123). 

4장의 키워드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다. 어째서 프랑스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악으로 간주하는 것일까?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해, 프랑스 지식인들은 역사적 필연성과 문명의 진보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프랑스 지식인들은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공격한다(179). 포퓰리즘은 낙오자들의 무지함과 과거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고, 민중적 정당성과 과두제적 정당성 사이의 악화된 모순을 은폐시킬 수 있는 편리한 용어로 사용된다(167).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통해, 프랑스 지식인들은 지식 엘리트에 의한 국가 과두제의 지배를 은폐하고 있으며, 민주적 인간을 자신의 욕망만 추구하는 사악한 주체나 소비자로 비난하면서 부유층에 의한 경제 과두제의 지배 역시 숨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는 민주주의가 자신의 정당성 근거를 ‘평등적 우연성’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192).   

-3-  

이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랑시에르는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재력에 기초한 권력 앞에, 그리고 이 권력과 협력하거나 또는 그것에 도전하는 세습적 권력 앞에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 있다. 민주주의는 사물의 원리로서의 자연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제도적 장치에 의해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그것은 결코 역사적 필연성의 결과도 아니며, 동시에 스스로 어떠한 역사적 필연성을 가지지도 않는다. 민주주의는 자신만이 보유하는 고유하며 항구적인 행위에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모습은 사상의 힘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한 자들에게 충분한 공포감과 증오감을 자극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누구와도 공평하게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용기와 기쁨을 선사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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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천황 이야기 - 메이지, 다이쇼, 쇼와의 정치사
야스다 히로시 지음, 하종문.이애숙 옮김 / 역사비평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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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통치의 핵심이자 딜레마인 천황과 일본 근대화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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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상 까치글방 130
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 / 까치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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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걸쳐 『극단의 시대:20세기 역사 (상)·(하)』(까치, 1997)를 읽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에릭 홉스봄의 박학다식한 역사서술을 요약한다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땅과 바다를 지도 위에 똑같이 그리는 일처럼 될 것이다. 그래서 본 리뷰에서는 『극단의 시대』 전반에 대한 간략한 의미를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 책 제목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극단의 시대』에서 극단(Extremes)은 다사다난했던 ‘단기 20세기(1914-1991)’를 지칭한 용어다. 20세기 전반부는 두 차례의 열전(熱戰)이 있었고, 20세기 후반부는 미소(美蘇)를 중심으로 한 냉전(冷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열전(熱戰) 사이에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10월 혁명)이 있었고, 냉전(冷戰) 중에는 (서구경제의) 황금시대가 있었다. 저자의 표현처럼, 20세기는 냉탕과 온탕, 롤러코스터 상하(上下)를 오고가는 극단(Extremes)의 시대였다.  

둘째, 번역가도 인정했듯이, 에릭 홉스봄의 역사관은 기본적으로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이다. 홉스봄이 말하는 황금시대와 산사태(The Landslide)시대는 곧 유럽인의 시각에서 정리된 것이다. 홉스봄 역시 유럽의 황금시대가 제3세계의 가난·억압·착취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산사태시대는 아리기 등이 주장하는 동아시아의 경제부흥을 알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계가 있다고 해서, 20세기 통사(通史)라는 『극단의 시대』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또한 이 책을 능가하는 20세기 통사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셋째,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항목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통사가 너무나 두꺼운 정치사와 너무나 가벼운 문화사를 갖고 있다면, 이 책은 다양한 분야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특히 『극단의 시대 (하)』 17장과 18장에서 에릭 홉스봄의 박학다식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18장은 과학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절반 이상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넷째, 역사에 대한 홉스봄의 입장이 인상 깊었다. 홉스봄은 ‘역사란 인류의 범죄들과 어리석은 짓들의 기록(p. 798)’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은 예언에는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다(p. 798)’고 부언하였다. 우리가 역사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점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아야한다’는 역사적 학습이다. 20세기 파시즘이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고,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파시즘이 일어난 배경과 경과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역사적 검토와 성찰을 해야 한다. 또한 이를 교훈 삼아 더 이상 파시즘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에릭 홉스봄의 경험담을 담고 있는 자전적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중간 중간에 홉스봄의 개인사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왔다. 193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전쟁이 일어날 거라 확신하였던 소년 홉스봄을 찾을 수 있고, 1950년대 케임브리지에서 유명 과학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던 소장학자 홉스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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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홉스봄을 싫어한다.

홉스봄은 알려진 것과 달리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다. 이 사람 글을 보면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아주 하찮게 여기고(그는 식민주의자다) 페미니스트들을 아주 경멸하고 게이와 같은 성소수자들을 아주 혐오하고 흑인운동을 무시하는 철저히 유럽중심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백인 남성 마르크스주의자가 홉스봄이다.

너무 그런 거는 모르고 우리 학계에서는 이른바 진보 또는 이른바 보수 학자 전부 다 홉스봄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쨌든 홉스봄은 그런 사람이다. 책을 면밀히 읽으면 그런 것을 알 수 있고 파악이 되는데 왜들 그렇게 홉스봄이라면 늘 난리들을 부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하 까치글방 131
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 / 까치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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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인류의 범죄들과 어리석은 짓들의 기록이라는 것을 확증할 수 있다(p.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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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공포 - 맑스 전과 후의 정치와 철학 바리에테 7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최원.서관모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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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이고, 번역 고생하셨습니다. 스피노자 맑스주의를 공부하기 위한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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