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03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배명자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얇다. 처음 독일인의 사랑을 보고 받은 느낌이었다. 소설이 아니라 작은 동화집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너무나 작고 얇은 책 이었다. 그럼에도 그 책에서 내 시선이 머문 이유는 어렴풋이 이 책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기심에 못이겨 책을 빼 내었다. 그것이 아마 고2때의 일 일 것이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귀여운 여인이 내가 즐겨읽는 책 이라고 하면 나의 기이한 책 취향을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소설의 아름다운 표현들과 가슴을 울리는 필체에 나는 언제나 깊은 울림을 느끼곤 했다. 독일인의 사랑도 처음에는 그랬다.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세세한 묘사. 낭만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탄성을 내 지르며 심장을 부여잡는 관객들 처럼 첫 도입부를 읽으며 그런 감정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철학적인 대화들이 오고가더니  종교적인 토론과 주장들이 오고가는 부분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나는 꿈에서 막 깬듯 당황한 나머지 책을 덮고 말았다. 지루하고 또 그저그런 종교서적들 중 하나라는 생각에 그대로 그 책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고3이 되어 버릇처럼 도서관 고전 칸에서 새 책을 찾으며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독일인의 사랑이 조금 다르게 내 눈에 띄었다. 여전히 얇은, 그러나 내게는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그 책이 이상하게 읽고 싶었다. 푹 빠져들었다가 확 깨는 고전 소설들 보다, 어떤 내게 진리를 깨우쳐 줄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그렇게 독일인의 사랑은 내 책장에 한 구석에 들어오게  되었다.

한 남자가 기억을 회상하며 책은 시작한다. 젊었을 때로, 더 어렸을 때로. 마침내 6살 아이가 되고, 1800년대에 도착한다. 이 아이가 화려한 성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방문하게  된다. 화려한 성, 화려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로 후작부인을 보게 되고, 후작 부인의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그 친구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았던, 특별한 그녀를 만나게 된다. 마리아. 주인공은 사랑 이상의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감정을 그녀에게 느끼지만, 그녀는 몹시 아팠다. 움직이지도,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소년이 될 때 쯔음 소년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된다. 물론 더이상 그녀를 볼 수 없지만, 소년 안에서 그녀는 천사의 형태로, 다른 자아로, 선의 형태로 남아있게 된다. 소년이 그가 되어 돌아와, 그녀를 다시 만났을때, 그는 그녀와 매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한다. 물론 그는 마리아를 사랑하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것들을 나누며 대화를 한다. 이 대화는 책의 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이들은 신앙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며, 시에 대해 연구를 하고, 본질을 탐구한다.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던 이 대화는, 사실 100년 가까이 된 저자의 생각과 신념 인데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깊게 다가왔다. 사실 대화는 너무나도 많은 본질과 고뇌를 담고 있어 그렇게 무겁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 주인공이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하면서 책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담게 된다. 타인과의 만남. 아니 그전에 타인이란 무엇인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사랑해야 하는가? 그것이 신의 섭리인가? 이 처절한 고민을 두 남녀가 하며 이야기는 흘러간다.

물론 독일인의 사랑은 이 질문들에 대해 완벽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고뇌를 하는 사람들이 한 글자 한 글자 꼭 꼭 씹어먹듯 소화시킨다면, 정반합의 원리로 다른 의견사이에 또 더 나은 나만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책은 직접 열쇠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열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푸집과 뜨거운 쇳물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토론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받은 교훈중 가장 나누고 싶은 것은 이 주인공과 마리아의 관계이다. 서로 사랑하는, 깊은 우정과 사랑을 동시에 느끼는 둘은 매일밤 이러한 주제로 토론하고 고뇌한다. 시대적 배경이 커다란 작용을 했을 것이다. 1800년대에는 격식을 차려 이야기 하고, 이러한 주제로 토론하는 것이 만연했으니까. 오만과 편견, 데미안등 비슷한 시대에 책들을 읽어보면 시대가 그랬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파티나 초대한 손님들과, 가족끼리 연인끼리 이러한 대화를 하는것을, 토론을, 때론 언성이 높아지는 장면이 많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현대사회는 존중이 더 커다란 영향력을 선사한다. 취향존중, 남의 의견을 존중. 물론 이것은 자유가 더욱 많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우리가 진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남을 존중하는 것도 역시 배려하는, 아름다운 문화이다. 하지만 우리는 배려, 존중이라는 것을 넘어 무관심, 귀찮음 같은 것들이 또한 우리안에 자리 잡았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토론하고 대화하기 싫어하는 현대 사람들. 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반합이 우리에게는 지금 도를 지나친 싸움과 어색한 형식적 대화로만 느껴진다.  두번째로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마리아가 주인공에 대한 실마리와 교훈을 주기 때문에, 저자가 성령님 이나 천사같은 영적인 높은 존재를 비유로 쓴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의 기품과 존재 자체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한번더 읽어보니, 사실  마리아 역시 인간으로 주인공과 같이 고민하고 사유하는 존재 였던 것이다.

지금껏 내가 고전소설에 이끌린 이유도 밝혀진다. 나는 이런 깊은 것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는 것에 대한 향수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그러한 것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것을 그리워 하고 있었고, 현대사회에서 찾지 못한채, 아니 사실 나도 배려라는 것을 명목으로 그러한 것을 꺼린채, 어색하다는 이유로 피한 채, 그 향수를 고전 책에서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반박하고, 동의하며, 내 생각을 시 구절을 인용해 이야기 하며...

'이처럼 우리는 오후마다 새로운 대화를 열었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꿰뚫어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녀는 내게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얘기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자라 온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어린아이가 치마에 하나 가득 모은 꽃잎을 아낌없이 잔디에 흩 뿌리듯이 그녀는 자기생각을 모두 풀어내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고, 귀하다. 그들은 <<독일신앙>> 이라는 책을 가지고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타인과 인간의 관계를 고뇌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런 글귀 그리고 표현 그들의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독자들이 나와함께 이런 사회를 꿈 꾸었으면 좋겠다.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그런 의지만 이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의 뒤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지침서!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이렇게 쓰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관계의 지침서.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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