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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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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의 조건은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제때' 도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놀랍도록 '제때' 귀환하는 묵은 책들에 대해서도
항상 눈 밝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건 좋은 독자의 자격일 것이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푸른역사, 2011)이 도착한
'지금, 여기'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역병이 돌아 소와 돼지 15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불과 몇 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안락사시킬 약물도 모자라 산채로 땅에 묻었다.
지하수에는 억울하게 죽은 짐승들의 피가 스며들고 있다.

연초부터 흉흉한 소문이 이어진다.
외계인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한다는 얘기쯤은 이제 다들 덤덤할 지경이다.
곧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소문에도 다들 지쳤다.
대통령과 권력자들의 추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다들 이런 얘기마저
듣기 지겨워진 건 아닌가 싶다.
그 모든 '말'들이 시간을 두고 사유 되기 보다, 그저 소비되고만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

이 책에서 1790년대에 살았던 불량선비 강이천이 대답한다.
문제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아니겠느냐고.

1790년대는 이상하리만큼 '지금, 여기'와 겹치는 장면들이 많다.
조선의 해안에는 UFO처럼 서양 배가 출몰하고 있었다.
오늘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의 글쓰기가 화제이듯
당시 지식층에선 '패관소품'이라는 새로운 문체가 유행했다.
또한 민간에선 각종 예언과 천주교가 인기였다.
이 또한 오늘날과 비교하면 각종 음모론의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좀 더 합리적으로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려는 인문학 열풍과 닮은꼴이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그때(1790년대) 무슨 일이 벌어졌나?
강이천 사건은 '지금, 여기'에서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로선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을 내 세대의 젊은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강이천은 고작 33살에 죽었다.
그는 이를테면 오타쿠처럼 천주교와 "큰 배"와 "세계지도"와 "기하학"에 열광했던 발랄한 젊은이였다.
혁명적인 사상가라기엔 공상적이었고, 신비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강이천이라는 사람의  미덕은 어찌 보면 소박하기 짝이 없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도고 고립된 약자를 향한 연민과 동정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장애우였다.
"육체적 움직임이 활발하지 못했던 탓에 그의 상상력과 지적 감수성은 무제한으로 확장된 것 같다."(245p)
줄 쳐 읽고, 또 연거푸 읽으면서 마음이 짠해지는 구절이다.

이 책의 필자이신 백승종 선생님은 기존의 연구와 달리
"강이천을 문제적 인간으로 만든 것은 그의 상상력이지, 현실적 조직능력이나
구체적인 혁명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었다."(242p)고 평가한다.
정조도 강이천과 김건순의 조직이라는 게 실상 별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조가 견딜 수 없이 두려워한 건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상상력'이었다.
상상력은 왕의 힘으로도 방역할 수 없는 전염병이었다.
일단 이 병에 걸리면 머리와 마음은 기성의 문명을 갑갑해하기 시작하고
권력 앞에 놀랍도록 용기있게 '개기게' 된다.

"바로 그 몽상에 파괴적인 힘이 있었다. 당시 몽상의 힘을 바로 인식한 이는
아마 국왕 정조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강이천의 제어되지 않은 상상력이
현실과 단단히 결합될 경우 그것은 국가를 전복시키고 성리학 중심의 조선 문화를
여지없이 파괴시켜버릴 수 있다는 걱정, 왕은 바로 그런 염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246p)

이 구절을 읽으며
68혁명 당시의 프랑스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구호를 떠올렸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Pouvoir a l’Imagination!"
그렇다.
2010년대의 출발점에서 나도 강이천처럼, 68혁명의 젊은이들처럼 외치고 싶다.
다시, 상상력에게 권력을!

정조는 마치 미친 명박이처럼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의 태동을 꺾으려 했다.
명박이는 젊은이들을 취업 생각밖에 못 하는 좀비로 만들기 위해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붙였다.
정조도 유생을 상대로 치르는 승보시에서 문체 점검을 엄격하게 하고,
심지어 글씨체까지도 통제하는 강공을 펼쳤다.
쟈스민 혁명 당시 튀니지가 트위터와 소셜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했던 것처럼
그리고 명박이의 개들이 미네르바를 구속했던 것처럼
정조도 당시 유행하던 '소품'을 문제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흔히 정조를 조선의 개혁군주라 칭송하지만
그는 1984 이전의 빅브라더였다.
빅브라더 정조의 재발견도 이 책의 백미다.

내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장하는 이유는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 우리를 향한 뜨거운 응원의 메세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강이천처럼 "문화투쟁"을 벌이고 있다.
블로그에 정권의 부당함을 비판할 때 우리는 강이천이다.
댓글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 아고라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의 인문학 세미나들에서, 뜨겁고 아름다운 토론의 여기저기에서
우리들은 강이천이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은 바로 그들을 향해  화이팅을 외치는 책이다.
권력을 상대하는 네티즌들의 싸움을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혹평한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짱돌 하나 날리지 않는 댓글질이나 포스팅질 쯤은 아무 소용없다고.
제발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짓 좀 하라고!
나는 그 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10년대의 강이천들은 세상 사람 모두를 전염시킬 기세로 끙끙 앓는
새로운 상상력의 보균자들이다.

우리는 이 부정한 세상에서
결국 이기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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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 - 스포츠민족주의와 식민지 근대, 개정판
천정환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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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함께 읽을만한 책!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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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주판
시부사와 에이치 지음, 노만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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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에서는 비지니스의 바이블이라고 하네요.  

이 책의 주인공 격인 시부사와 에이치는 논어를 <서민들의 바이블>로 여겼다고 하네요.

윤리없는 경영은 필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 부분이라든가 

우리나라의 양심없는 경제인들에게도 귀감이 될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도 깜끔하게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읽기 편했습니다. 

역자가 시인이자 동아시아권 전문역자이시더군요. 

앞으로의 활동이 크게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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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주판
시부사와 에이치 지음, 노만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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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끔하고 정확하게 좋은 책이 좋은 번역으로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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