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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에 어서 오세요 - 소설
타키모토 타츠히코 지음, 아베 요시토시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NHK에 어서오세요''는 원작인 소설보다 만화책으로 더 유명한, 히키코모리(방구석 폐인,은둔형 폐인을 말한다)의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만화책은 히키코모리를 중심으로 한 자학 개그들이 연발하는 개그 작품이지만, 원작인 소설은 개그적인 요소는 상당히 배제 되어 있고, 히키코모리의 자기 고찰과 살아가는 방식등에 다루는 진지하고 깊은 내용이다.
만화책에서 건너온 분들은 이점을 주의하도록
만화책과 소설은 전혀 별개의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Welcome to the N.H.K
전직 히키코모리였던 작가가 쓴 글 답게 히키코모리의 생활에 대한 묘사가 아주 기가 막힌다.
하루종일 PC를 부둥켜 안고 사는 것은 물론이고, PC로 하는 행동들(검색, 다운등)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리얼하고 전문적이어서 깜짝 놀랄 정도 이다.
소설 전체 분량을 따져 보았을 때 이 ''은둔 생활 묘사''의 양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해서 묘하게 루즈하고 지겹게 느껴지는데,
오히려 작품 전체의 의미로 따져 보았을 때 이 길고 지겨운 묘사는 플러스가 되었다고 할수 있다.
(은둔 생활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재밌고 즐거운 은둔 생활이란 없을 뿐더러, 주인공도 그런건 바라지 않는다.)
은둔 묘사도 좋지만 역시 이 작품은 수수께끼의 미소녀인 미사키와의 썸씽이 가장 주목할 부분일것이다.
사실 이 ''이유없이 무작정 접근하는 미소녀''는 이 작품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요소이긴 하다.
무엇보다도 리얼을 추구하고 리얼 속에서의 절망을 그려내는 작품인데 이런 판타지 요소라니?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 했지만 그 설정은 미소녀 게임을 즐겨온 유저들에게 숨겨둔 일종의 트릭에 가까운 장치이다.
작가는 ''무작정 접근하는 미소녀''라는 설정이 보여주는 구멍을 알고 있었고, 그 설정이 어떤 식으로 받아 들여지는지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쓴것이다.
결국 후반에 [미소녀 게임 유저 전부를 배신하는] 전개로 들어 갔을땐 그 교묘한 구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모든 절망은 NHK에게
결국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인간이 느낄수 밖에 없는 외로움, 고독, 소외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들과 똑같이 시작하고 똑같은 길을 걸어온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뒤쳐져 있을까
별로 잘못한 것도 없이 무난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왜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왜 나는 사는게 이렇게 힘들까?
누구에게나 그런건 하나쯤 있지 않을까?
[남들에게는 없는데 나에게만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말이다.
그건 신체상의 약점이 될수도 있겠고, 인간 관계가 될수 있겠고, 금전적인 문제가 될수도 있겠다.
어째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지? 이건 전부 내 탓일까?
그 물음에 대해 해답을 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그건 누구 하나 잘못하지 않았는데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NHK의 등장 인물들은 이 부조리한 삶이 힘들고 괴롭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고, 무언가 ''행동'' 할 수 있을 정도의 용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이 부조리를 전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달리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아니다.
고작 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이 부조리한 현실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뿐
너무나 힘들고 괴롭지만 의지할 곳이 없는 그들은 그것 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마저 하지 못한다)
그렇게 서툴고 서투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읽다보면 괴롭고 슬프고 씁쓸해지는 그런 작품이다.
■모든 희망은 미래에게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나서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건
이 작품에서 주는 ''희망''의 메시지 때문이 아닐까?
사실 이 작품에선 사건다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나도 그건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의 사건일 뿐이다.
이렇듯 주인공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고, 주인공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지만,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주인공의 정신 상태 & 주변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만 간다.
그런 주인공이 딱 한번 ''남의 사건''을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 후부턴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변화하여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 사태가 점점 호전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빠진건 아무 것도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은 다 주인공의 생각의 문제일뿐)
하지만 그가 남을 위해 행동하고, 힘든 삶이라도 계속 살아가기로 결심한 순간,
즉 생각을 전환하고 미래에 대해 기대를 품은 순간에 이미 모든 것은 다 호전된 것이다.
NHK에서 말해주고자 하는건 그런게 아닐까?
괴롭고 힘들어도 생각의 전환만으로 미래는 호전되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을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생각의 전환으로 바뀌는 미래''와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기대''로
즐겁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NHK에 어서오세요!]이다.